어찌보면 별볼 일 없는 참견 텃밭 이야기


민경은 | kongpaper@hanmail.net

승인 2014.08.18  

<여러가지연구소 텃밭정원>

참견을 초대하는 유연한 틈

여러가지연구소 2층 마당에 펼쳐진 텃밭정원은 지난 5월부터 여러 사람들이 오며가며 참견하는 대로 일궈지고 있다. 배달 온 디씨마트 아저씨가 첫 열매를 따면 많이 열린다 해서 방울 토마토 첫 열매를 땄더니, 그 다음 날 들른 선배는 먹을 것을 어찌 다 따버렸느냐며 안타까워한다. 옥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언니가 오이대 올라오는 것을 잘라줘야 오래 먹을 수 있다 해서 오이대를 싹둑 잘라줬더니, 오이 심은 스트로폼 박스를 구해주신 이웃이 오셔서 오이대를 왜 잘랐느냐며 나무란다. 누구는 잎이 누렇게 뜬 것은 물이 모자라서라며 물주라 하고, 누구는 영양이 부족하다며 비료를 주라 한다.
 
이렇게 '참견 텃밭'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러가지연구소 연구원들 4명 모두 농사에 대한 경험과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여러가지연구소가 위치한 원미동에는 집집마다 식물을 가꾸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웃들과 소통하며 숨은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혜를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숨은 고수들로부터 상추 키우기, 블루베리 키우기, 케일을 맛있게 먹는 법 등을 배우며, 여전히 여지가 많은 참견 텃밭은 한 여름을 맞이했다.
 
 


 

<참견하는 이웃>

 


 

<참견하는 이웃2>

 
상추키우기 비법은 앞 집 아저씨로부터 얻었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3년 전에 이사 온 아저씨는 상추 모종을 사다가 심은 우리에게 씨앗을 추천해주셨다. 씨앗은 비닐을 덮어 발아시키는 것이 좋고, 상추를 수확해서 먹는 중간에도 씨를 조금씩 뿌려주면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비닐을 덮어두면, 흙이 얼지 않아 싱싱한 상추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아저씨의 평범하고도 비범한 비법을 듣노라면 말로는 농사가 참 쉽다. 맞은 편 옥상 농부 아주머니는 옥상 너머로 맛난 대화를 나누는 이웃이다. 옥상에서 옥상으로 채소 먹는 방법을 나누기도 하고, 여문 오이를 따서 맛보라며 던져주기도 한다. 넝쿨식물 지지대를 만드는 시기를 한참 놓친 후에, 아주머니의 넝쿨지지대를 보고 따라 만들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신선한, 믿을 수 있는, 제철에 난 농산물만큼 '유연한 빈 틈'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연한 빈 틈, 참견 텃밭은 이웃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 거리낌 없이 이웃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참견텃밭 덕에 사람과 마주하고, 자연과 마주하고, 그리고 도시와 마주한다.
 
일상적인 시간을 창조적으로 보내는 방법
 
내가 일하고 있는 여러가지연구소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나는 때때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 밥상을 차려 먹는다. 함께 요리해서 둘러 앉아 먹는 소박한 밥상의 행복은 텃밭에서 따온 각종 채소와 바질, 루꼴라, 고수, 타임 등의 허브를 곁들이면 풍미가 짙어진다. 직접 수확한 오이로 담근 피클까지 곁들이면, 만족스러움을 표하는 짧은 언어들이 식탁을 메운다. '으음~으음~음~~~~'
 
우리는 도시에서 돈으로 먹는 것을 쉽게 살 수 있다. 그 종류도 퍽이나 다양하다. 심지어 24시간, 365일 살 수 있다. 배달음식은 시간을 먹어치우듯 빠르게 내 앞으로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살수 있는 음식들을 먹고나면, 시도 때도 없이 빨리 배고파 진다. 그래서 일부분의 (일부분일지라도) 식재료를 내 손으로 키우는 일, 음식을 만드는 일, 먹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일상 안에서 소중한 일로 여겨진다. 텃밭에서 식탁까지의 시간이 삶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까. 많은 일들을 빨리빨리 하고, 때로는 해치우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일상에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는 시간만큼은 천천히 하려고 애쓴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여러가지연구소 밥상>
 
우리에게는 유연한 틈만큼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좀 더 창조적이고, 잃어버린 야생성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연구소가 올해 봄에 공간을 마련하고 텃밭을 갖기 전, 혼자있는 시간 대부분을 카페, 도서관, 시장, 마트를 전전하며 보냈다.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 대부분을 참견 텃밭에서 보낸다. 여러가지연구소 방문객들이 돌아가면 참견 텃밭은 내게 카페가 되고, 도서관이 되고, 시장이 된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잔잔한 시간에는 다른 생물과 사물을 주의 깊게 만날 수 있다.
 
참견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
 
텃밭은 내게 채소뿐 만이 아닌 창조적인 시간, 마주침을 수확하는 장소이다. 텃밭에 애정 어린 개입을 해준 이웃들, 지혜를 나눠준 숨은 고수들 덕분에 나는 세상을 향해 참견할 용기를 수확했다. 함께 꽃과 열매를 기다리는 시간을 수확하고, 그 시간 안에서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의 기억을 수확했다. 햇빛을 감사히 느끼고 비가 오는 것을 반가하며 날씨에 따라 관심을 기울이며, 민감해지는 몸을 수확했다.
 
가을이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온 요즘, 다른 이의 텃밭에 담긴 삶에 애정어린 참견을 해 보는 계획을 세워본다. 소소한 도농교류로 위대하게 밥상을 차리는 것을.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 그 밥상을 통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얻는 것을. 숨은 고수들을 더 만나고, 더 유연하게 좌충우돌하는 텃밭이 되어 삶을 교역하는 것을.
 



 
<이웃과 같이 먹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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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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