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배운 지금은 작문과 회화가 가능합니다.
파고다 부평 일본어 대표강사 안지혜선생님 수업을 들으시면 일본어를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협찬 없이 쓴 글입니다.

자세한 정보 및 문의사항은
http://www.pagoda21.com/speaker/detail/AJH08
을 참고해주세요 ㅎㅎ


Posted by 정규화
:

2015-06-10

[동규루의 오프닝 멘트]
청소년 시절부터 국가 공안국으로부터 '오음 신리쿄'(한국명 오음 진리교)에 대한 스파이활동을 강요받아온 일본 여성 기타가와 가즈미(29)씨가 절박한 심정으로 북에 망명신청을 하다 결국 불법적으로 입국하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북조선계 재일교포단체인 '조총련'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사연일지. 그 내용을 한 번 알아봅시다.

--

북한에 지난 8월말 망명을 신청한 기타가와 가즈미라는 여성이 일본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와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타가와 가즈미 씨의 망명 동기 등에 관해 도쿄지국의 채명석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합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지난달 28일 일본 여성 1명이 제3국에서 관광여행 중 북한에 불법 입국해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요도호 납치 실행 범들이 북한에 망명한 이래 일본인이 북한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의 큰 관심을 끌어 왔습니다.

일본언론들의 추적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말 북한에 망명을 신청한 여성은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올해 29살의 기타가와 가즈미라는 기혼 여성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20대 초반에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 오사카 시내의 원 룸에 거주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과 일본언론들이 보도한 대로 기타가와 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수차례 망명 신청을 거부당한 후 지난 8월말 두만강에 뛰어들어 북한에 망명을 신청했다면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냐는 의문이 따릅니다.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불거진 이후 일본 국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만 크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기타가와 씨가 공안 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했었다는 일본언론들의 보도가 기타가와 씨의 망명 동기를 풀어주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일본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지하철 살인사건을 일으킨 신흥종교 오음 신리쿄에 96년1월 입단하게 됩니다. 그 직후 가타가와 씨는 필로폰 사용 죄로 체포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일본 공안조사청은 이런 경력을 갖고 있는 기타가와 씨에게 97년 여름 경 접근해 오음 신리쿄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해줄 것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 요원들의 강요에 못 이겨 스파이 활동을 수락하고 2001년 여름까지 오음 신리쿄 ,그 후 아레프로 개명한 교단에 대한 내부활동을 염탐해 정기적으로 공안조사청에 보고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공안조사청 요원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 기타가와씨는 이 문제가 공개되고 알력이 격화되자 아레프 교단을 탈퇴함과 동시에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도 단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도 펼쳐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역으로 북한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됐고 일본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기 위해서 일본을 탈출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기타가와 씨는 2년 전 포커스라는 주간지에 "나는 육체적 생명보다는 사회적 생명이나 정치적 생명을 중시하고 싶다.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노예는 되고 싶지 않다. 일본에 공헌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수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이 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북한으로 건너 간 후 일본의 친지에게 10월5일까지 다섯차례 편지를 보내온 것으로 밝혀졌으며, 10월5자 편지에는 "이달 2일 이쪽 사람들에게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그가 과연 애시당초부터 북한에 정식으로 망명할 의사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조차 들게 합니다.

기타가와씨는 또 북한으로 8월24일 건너간 후 27일부터 평양의 호텔에서 여성 안내원 동무와 24시간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고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이 북한 대사관을 통해 신원조회를 의뢰해 왔으나 6일 현재까지 북한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회답이 없는 상태라고 아사히 신문이 7일 보도했습니다.

일부보도대로 가타가와 씨가 일본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뿐 아니라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해 온 전력이 있다면 기타가와 씨 망명 사건의 파장이 간단히 수습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도쿄에서 RFA 채명석입니다.
© 2004 Radio Free Asia

http://www.rfa.org/korean/in_focus/120186-20031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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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도 펼쳐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역으로 북한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됐고 일본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기 위해서 일본을 탈출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기타가와 씨는 2년 전 포커스라는 주간지에 "​나는 육체적 생명보다는 사회적 생명이나 정치적 생명을 중시하고 ​싶다.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노예는 되고 싶지 않다. 일본에 공헌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수기를 남겼습니다.

​[
동규루의 마무리 코멘트]
위 기사에서 발췌한 두 문단, 특히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에서 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요.
기타가와씨 또한 체제와 이념경쟁이 낳은 한 명의 희생양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기타가와 가즈미 씨. 부디 북한에 망명이 받아들여져서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네요.(프랑스나 캐나다 등으로 갔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것 같지만 말이죠..)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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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sa5000/10184312752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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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술의 조식운동  건강장수노후행복 

2012/07/19 06:21

양명술의 조식운동

최근 미국에서는 보호구에 거주하는 인디언의 당뇨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내용인즉

미국정부가 소수민족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인들의 기름진 식단으로 꾸며진 식품을

보호구의 인디언에게 지급해 왔는데, 그 결과 많은 인디언이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이 그들의 전통식을 버리고 문명식을 공급받아 환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디언 보호정책이 아니라 박멸정책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식생활의 서양화

로 인디언들이 병에 걸리는 확률은 백인의 무려 4배. 종족에 따라서는 10배까지 올라

간다.

미국정부에서 파견한 프라이스 박사의 조사에서도 백인들의 음식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식생활을 완고하게 지키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

은 문명인들이 걸리는 성인병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그린랜드의 이누잇 토인들은 뇌혈전증, 심근경색들의 혈전증 질환이 거의 없었

다. 이런 이누잇인들이 덴마크에 귀화하여 덴마크 사람과 똑같은 식생활을 하면서 덴

마크 사람과 같이 혈전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여러 예를 볼때 우리나라 어린이들

이 김치, 된장, 고추장을 버리고 피자, 햄버거, 소시지만 찾는 것은 어려서부터 소아

비만증, 소아당뇨병, 소아혈전증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

일본이 장수국으로 유명한데 신선한 생선, 현미식, 콩식품 먹는 것이 이들의 장수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콩의 고향이 한국이라는 설을 두고 육종학자들의 연구가 한창인데, 콩에는'다이제

인', '게니스틴'이라는 성분이 매우 풍부하다.

교토대학 이에모리교수가 조사한 바 일본인의 뇨에서 위의 두가지 성분이 많이 검출

되었고, 심근경색증이 많은 핀란드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성분이 10배이상 검출되었

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다이제인' '게니스틴'등이 여성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는 점

을 알아내었고 그 때문에 성인병이 예방된다는 것이다.

조선조 양명술(식양생술)을 현대화하는 지금의 연구에서 필자는 '전립선암'을 주목

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도 전립선암으로 타계했다. 뒤늦게 한국 건휘제약

에서 보조기능식품인 인삼추출물 '아답타겐'을 보내 6개월 수명연장을 시켜주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에는 위암, 간암환자는 많아도 '전립선암' 환자는 비교적 적어 이 병으로 사망

할 확률도 아직까지는 적다. 전립선암은 급격하게 폐와 같은 장기로 전이돼 사망 원인

이 되는데, 콩을 많이 섭취한 일본인에게는 암이 전립선에 머물거나 전이되는 일이 드

물다.

즉 콩에 포함되어 있는 여성호르몬과 같은 성분이 작용으로 전립선암이 다른 장기

(내장)에 전이되지 않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두부, 콩밥, 청국장, 콩국 등의 콩으로 된 음식을 기피한다면 장차 전립

선암에 걸릴 경우 폐암으로 전이될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황토와 콩이 몸의 해독작용을 돕는다

양명회 회원들은 '벤트나이트'라는 황토가루에서 지장수를 만들어 그 지장수로 물김

치, 된장국, 콩나물국을 만들어 먹는 일을 생활화하고 있다.

흙, 특히 황토 속에는 항생제에 가까운 미생물, 곰팡이가 있어서 해독작용은 돕는

다. 황토속의 이로운 미생물은 대장 내의 노폐물을 잘 분해시켜 장내의 청소부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쇠똥을 섞은 진흙을 햇볕에 약간 건

조시킨 것을 바른다는 보고가 있다. 흙속 곰팡이 등의 미생물에서 항생물질이 발생하

는 것을 마사이족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페니실린 등의 항생물질도 토양의 미생물

곰팡이에서 추출해 만든다.

한편 콩을 먹으렴 콩 속의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성분이 갱년기의 골다공증에 효력을

발휘하고 뇌졸중을 예방하며 콜레스테롤로 생기는 동맥경화에 효과가 크다. 콩에는 콜

레스테롤과 비슷한 '시토스테롤'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그 물질이 콜레스테롤의 흡수

를 억제해 준다.

또 콩의 단백질, 글로블린에도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으니 흔하다

고 해서 약효까지 우스운 식품은 결코 아니다.

거친 잡곡밥에는 반드시 콩을 넣어야 식물성섬유가 콩과 어우러져 각종 성인병을 몸

밖으로 내쫓는다. 야채를 날 것으로 많이 먹은 사람은 체내 비타민A의 효력이 극대화

된다.

쥐눈이콩으로 만드는 콩나물을 집에서 길러 비리지 않을 만큼 살짝 데친 것과 왕새

우를 소금구이하여 익힌 것을 같은 분량으로 섞어 믹서에 갈아 볶은 현미를 가루낸 것

1백g을 타 마시는 방법이 양명회에서 고안되어 많은 사람에게 다이어트법으로 보급되

고 있다.

콩나물이나 콩의 싹에는 '다이제인' '제니스친'외에도 비타민C가 풍부하며, 왕새우

에는 필수 단백질, 키틴, 키토산의 원료, 칼슘 인성분이 풍부하며 콩나물과 궁합이 잘

맞는다.

콩나물과 왕새우가 비만을 다스린다

백두대간의 우수한 미네랄은 예성강, 한강, 임진강을 따라 김포만에 흘러들어 'Kore

a Shrimp' 라는 학명을 가진 왕새우를 키운다.

심한 비만에는 콩나물 5 :왕새우 5의 비율로 만든 식품에 약수를 두배로 타서 1일 2

회 마시면 3-4일만에 체중이 감량된다.

심하지 않은 비만에는

*아침에는 가루낸 늘보리 1백g을 미음을 쑤어 먹고, 콩을 넣은 잡곡밥을 평소 식사

의 50%만 한다. 점심은 콩나물, 왕새우 믹스(각 50%씩 혼합) 한 컵만 마시고,

*저녁은 콩죽을 묽게 하여 1공기만 먹으면 1개월 이내에 숙변이 빠지면서 2개월째에

체중감량을 할 수 있다. 콩나물이나 왕새우 속의 필수영양분을 섭취하지 않고 무조건

단식하거나 반단식을 하면 대사에 이상이 발생하여 단식, 절식 후에 얼굴이 주름투성

이가 되고 심장이나 내장의 단백질까지 모두 칼로리로 소화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멕시코의 경우에 새우주스만 먹고 밥을 전혀 안먹는 Shrimp Fasting Club이 큰 유행이 되고 있다.

흰빵, 흰쌀밥은 기름기 많은 고기와 함께 대사질환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에 보리, 좁쌀, 수수쌀, 콩을 잡곡밥과 함께 1개월 1회 3-4일간 왕새우+콩나물주스 마시기를 실천하면 비만으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콩나물을 넣는 것은 지혜로운 조상들의 식양생술을 도입한 것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1c1b1b1&logNo=8016471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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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hongmaclub/2345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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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강역도와 고려의 모습

파워 가면닌자(aisingioro) 
2012.04.11 14:25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할 즈음에 고려, 서하는 금나라의 지배를, 베트남은 송나라의 지배를 계속 받고 있었고 서요는 호라즘을 지배한 상태였다. 그 외의 국가는 각양각색인데 몽골이 통일될 당시 8차례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호라즘과 서요 사이의 분쟁도 있었는데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일본은 아직 홋카이도를 정복하지 않았던 상태지만 그 당시는 호조(北條)가의 통치가 있었다고 한다. 쇼군은 섭관가 계통에 실권도 없었던 것이나 미나모토 직계의 쇼군은 2대에 끝난 지 오래였다. 그리고 베트남 남부에는 크메르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게 되었는데 대리국과 버마는 독립국 형태, 인도는 많은 나라로 이미 갈라져있었다고 하지만 몽골의 영토는 더 넓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몽골이 완전히 통일되었고 호라즘과의 분쟁 중인 서요와 금나라는 이제 몽골에 위축되어갔으며 서하는 몽골에 복속되어버렸다. 이 와중에 송나라와 금나라는 무려 4차례나 전투를 치루게 되었고 크메르 제국과 버마, 대리국의 영토는 더 넓어졌다. 지금도 일본에서 호조가의 통치가 지속되었지만 그 당시 천황도 호조 가와 막부 때문에 제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고 게다가 천황가 부분에 있어 크게 두 부류로 분류되어버린 격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많은 나라들에서의 변화가 자주 두드러지고 있는데 아직 불확실하나 고려가 아직도 금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도 그 지배가 한계에 이미 다다른 상태여서 금나라는 몽골로 인해 세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고려는 독립하게 된다.



마침내 고려가 독립되었지만 서하를 복속시킨 몽골은 서요를 계속 압박하고 있지만 서

요와 호라즘은 완전히 갈라져 3차례 전투가 발생되기도 했다. 게다가 금나라는 완전히 쇠퇴되었지만 몽골, 금나라, 고려 사이에 수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자주독립은 계속될 수 없게 되었는데 곧 있으면 몽골의 지배를 받지만 이와 동시에 금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뒤이어 송나라, 대리국까지 멸망시키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원나라의 시작 이전의 일들이다.



출처 :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1402955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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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공동 승차권

해외/일본 2014. 12. 4. 18:57 |

출처 : 저스트고 일본 기차여행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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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존경어 겸양어 활용법과 어느 상황에 사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예시 있으면 좋습니다.

한자 해석하는법 말고 공부방법 아는것 있으면 알려주세요



[답변]
한자 공부법은 먼저 단어, 문장을 공부하면서 그 한자를 함께 공부하시면 됩니다.

일본 블로거가 쓴 겸양어, 존경어 공부법 적어드릴게요.

 

「존경어/겸양어」의 표현

 일본어의 「존경어」와 「겸양어」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존경어」는 예전, 국어 시간에도 많이 듣고, 배워서 의미를 잘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일본어에는 이 「존경어」말고도, 「겸양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간은 생소한 단어 이지요!

한국에서는 상대를 자기보다 높여서 존경을 표현하지만,
일본에서는 상대보다 자기를 더 낮춰서도 존경을 표현합니다.
또한, 일본어에서는 「존경어」 보다도, 「겸양어」를 더 존경의 의미나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과연?? 한국에서는 「겸양어」 표현이 없는가?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특별히 정해 놓고, 칭하지만 않았었지, 일본어의 "겸양어"와 비슷한 표현이 있더라구요!

예를 들어보면...
자신과, 직장 상사(과장), 부서 팀장(부장), 이렇게 3명이 자리한 상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신보다 직장 상사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둘이서 있을때는 「존경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부서 팀장까지 다 모인 회의석 상에서는 직장 상사도 있고, 부서 팀장도 있습니다.
자신보다는 이들 두사람이 높은 위치이기에, 당연히, 존경의 예우 차원에서 「존경어」를 써야 하겠죠!
1:1상황이라면, 상대만 높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1:1:1 또는 1:다수:1상황에서 「존경어」 표현이...
다소 문제가 되는 경우를 경험하신분 많으실겁니다!
즉, 자신이 부장에게 과장에 관련된 사항을 보고할 때를 상상하면서, 예문을 들어 보겠습니다!

자신 : 부장님, 이번 Project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부장 : 음, 그래! 김과장은 이 보고서에 대해 뭐라고 하더나?
자신 : 예, 과장님도 아주 좋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보다 과장도 높고, 부장도 높은 위치에 있지만...
부장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과장이건, 자신이건, 낮은 위치의 사람입니다!

즉, 부장에게는 「과장님」이 아닌, 「김과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것이지요!
또한, 「하셨습니다」가 아닌, 「했습니다」가 올바른 존경의 표현이지요!
이와 같은 맹락에서 「겸양어」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본론으로 와서, 오늘의 주제인 「존경어」와 「겸양어」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존경어」와 「겸양어」를 기본형과 비교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래는 「기본형、존경어、겸양어」순으로 몇가지를 나열해 보았습니다!

居(い)る  →  いらっしゃる / おいでになる  →  おる
在(あ)る  →  いらっしゃる / おいでになる  →  御座(ござ)る
行(い)く / 来(く)る  →  いらっしゃる / おいでになる  →  参(まい)る
食(た)べる / 飲(の)む  →  召(め)し上(あ)がる  →  頂(いただ)く
見(み)る  →  ご覧(らん)になる  →  拝見(はいけん)する
訪(たず)ねる  →  お訪(たず)ねになる  →  伺(うかが)う
聞(き)く  →  お聞(き)きになる  →  伺(うかが)う
会(あ)う  →  お会(あ)いになる  →  お目(め)にかかる
知(し)る  →  ご存(ぞん)じだ  →  存(ぞん)じる
言(い)う  →  おっしゃる  →  申(もう)す
する  →  なさる  →  致(いた)す
寝(ね)る  →  お休(やす)みになる


1.문법적 규칙에 의한 존경어와 겸양어 표현
  ① 존경 표현:순수일본어(和語)앞에는 「お」를, 한자어 앞에는 「ご」를 붙이고,
           「동사 연용형」 또는 「명사」 뒤에는 「~になる」를 붙입니다.
    帰(かえ)る  →  お帰(かえ)りになる
    使(つか)う  →  お使(つか)いになる
    卒業(そつぎょう)  →  ご卒業(そつぎょう)になる
    出発(しゅっぱつ)  →  ご出発(しゅっぱつ)になる

  ② 겸양 표현:순수일본어(和語) 앞에는 「お」를, 한자어 앞에는 「ご」를 붙이고,
           「동사 연용형」 또는 「명사」 뒤에는 「~する」 또는 「~致(いた)す」를 붙입니다.
    持(も)つ  →  お持(もち)する  →  お持(もち)致(いた)す
    手伝(てつた)う  →  お手伝(てつた)いする  →  お手伝(てつた)い致(いた)す
    返(かえ)す  →  お返(かえ)しする  →  お返(かえ)し致(いた)す
    電話(でんわ)  →  お電話(でんわ)する  →  お電話(でんわ)致(いた)す
    連絡(れんらく)  →  ご連絡(れんらく)する  →  ご連絡(れんらく)致(いた)す


2.동사만의 독특한 존경 표현 만들기
  동사의 기본형을 수동형(け형)인, 「れる / られる / される형」으로 바꾸어 이용하는 것이며,
  이 방법은 동사의 경어 표현을 만들기 위해서 자주 쓰이는 방법입니다.
  예) ~しましたか? (~했습니까?)  →  ~されましたか? (~하셨습니까?)
     ~来(き)ました。 (~왔습니다.)  →  ~来(こ)られました。 (~오셨습니다.)
     ~行(い)きました。 (~갔습니다.)  →  ~行(い)かれました。 (~가셨습니다.)


3.지시 대명사의 공손한 표현
  예) ここ  →  こちら
     そこ  →  そちら
     どこ  →  どちら
     あそこ  →  あちら


4.기타 표현
  ① 「くれる:주다」의 존경 표현은 「下(くだ)さる」이고,
    「貰(もら)う:받다」의 겸양 표현은 「頂(いただ)く」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적으로 「~てくれる:~해 주다」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て貰(もら)う」 또는,
    「~て頂(いただ)く:~해 받다」처럼 수동형(け형)으로 표현하면, 좀더 감사의 마음이 전달될 겁니다.
    한국어에는 없는 용법이므로 꼭 익혀두기 바랍니다!
    이 표현 방법으로 고쳐서 말하고 노력하다가 보면, 일본인처럼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일본인들은 수동형 표현을 잘 쓰지만, 우리에게는 어색할 겁니다!
    하지만, 일본어의 실력자가 되려면, 꼭 익혀 두세요!
    그리고, 수동형으로 바꿀 때 주의점은 주어에 붙는 조사 「が」가 「に」로 바뀝니다. 잊지마세요!

  ② 또한, 한국어에는 전혀 없는 표현이지만, 윗 문장의 「~て貰(もら)う / ~て頂(いただ)く」과 같은,
    경어 표현중에, 「~せて / ~させて 頂(いただ)く」라는 표현도 더불어 알아 두면 좋을 겁니다!
    차이점은 「~て貰(もら)う / ~て頂(いただ)く」가 남이 하는 행동에 대하여 말한 것에 반해서,
    「~せて / ~させて 頂(いただ)く」는 자신의 행동을 말할 때 쓴다는 것이죠!
    상대방에 대한 예의의 표현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표현을 최대로 겸손하게 말하고자 할때 활용합니다!
    많은분들께서 번역이나, 해석을 하실때, 많이들 어려워하시는데, 해석은 똑같습니다!!


실제, 경어 표현은 일본인들도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더 어려워하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합니다!
한국어에서도 존경어 표현은 어려운 것이기에...
일본어를 공부하는데에 있어서도 난코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어는 결코 어려운게 아닙니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을뿐 입니다!


그럼 답변이 도움 되셨길..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404&docId=210303269

(원 출처 : http://blogs.yahoo.co.jp/katsuralee/4793030.html)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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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군사기지 건설 반대 ‘섬 전체 투쟁’ 불붙나

2014.09.23주간경향 1093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8월 말에 일주일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오키나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과 현장의 분위기를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간의 ‘온도차’가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각의에서 결정한 이후 17년간 쟁점이 되었던 후텐마 기지의 북부 헤노코로의 이전이 공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결정 당일 오키나와 현지의 양대 언론인 <류큐신보>와 <오키나와 타임스>는 이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류큐신보>는 각의에서의 해석 변경이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쿠데타적 발상이며, 이 사태는 결국 오키나와를 또 다른 전쟁위협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으로 만들 텐가”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8월 14일 오키나와 나고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해상시위를 벌이다 일본 해안경비대에 제지당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해상보안청 보트가 카누시위대 압박
‘악마의 섬’이라는 표현은 수사적인 것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의 점령 이후 현재까지 오키나와는 사실상 미국의 군사식민지로서의 성격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전쟁에 오키나와의 군사기지가 사실상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걸프전과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전폭기가 발진한 곳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였다. 베트남전쟁 시기 오키나와는 ‘악마의 섬’으로 불렸다. 베트남인들은 오키나와에서 발진해 맹폭을 퍼붓는 폭격기를 저주하면서 동시에 오키나와도 저주했다. 중세 중국인들이 오키나와라는 발음과 유사한 음차표기를 사용해 악귀도(惡鬼島)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베트남인들이 전쟁 당시의 오키나와를 실제로 ‘악마의 섬’으로 불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인들은 자신들이 태평양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체험했기에 그 어떤 민족보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반전집회가 계속되었으며,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미군들을 보호해주고 망명시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인들은 미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희생되었다. 섬 주민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된 전쟁의 비극은 오키나와인들에게 ‘군대는 국민을 지키지 않는다’는 교훈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반전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노골화하고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향후 200년간 활용할 것이라며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노골적으로 강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오키나와 방위국은 해상기지 예정지인 오우라 만 매립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본 본도에서 용역들을 불러와 기지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고, 해상에서는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주민들의 카누시위를 압박, 연일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헤노코 신기지 반대행동은 나고 시민들의 현장투쟁에서 더 나아가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내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8월 23일에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8·23 현민 대행동이 있었다. 나는 8월 22일과 23일 양일간에 걸쳐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부 앞 정문과 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지 반대행동을 취재할 수 있었는데, 주민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8월 22일 주민들의 감시선인 평화호를 타고 현민들의 해상 카누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오우라 만으로 나아갔다. 일본의 해상보안청 경비선들이 기지 건설구역을 표시하는 부표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고, 해상에는 대형 구축함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10여척 이상의 카누를 타고 기지 건설현장을 대응감시하고 있었는데, 해상보안청 소속 모터보트가 카누시위대에 바짝 붙어 공세적으로 압박하는 풍경을 자주 보았다.

오는 11월 지사선거에 최대 이슈로
그날 평화호에는 야마우치 쓰에코, 아라가키 세이료 오키나와 현의원, 지역 언론 취재기자,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인 마이클과 내가 동승했는데, 취재·조사를 목적으로 배에 타고 있는 우리에게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강한 경고방송과 충돌위협을 거듭하면서 카메라로 우리들을 채증했다.

캠프 슈와부 정문에는 약 80명의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면 류큐대학과 오키나와대학을 포함한 오키나와의 대학생들이 다수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어린 중·고생들도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그들은 기지 앞에서 상주하면서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 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이 역으로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실제로 8월 23일 오후 1시 캠프 슈와부 정문 앞에서 진행된 ‘8·23 현민 대행동’에는 3600여명의 오키나와 현민들이 집회에 참여해 기지 건설에 항의했다. 캠프 슈와부가 위치해 있는 북부 나고시 헤노코로 이동하기에는 교통과 주차시절 모두가 빈약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본도 각 지역에서 30대의 임대버스를 타고 현민들이 운집한 셈인데, 헤노코 투쟁이 시작된 이후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집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고 집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오키나와 현민들의 ‘섬 전체 투쟁’이 다시 촉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은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에 있을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는 반기지운동 측에서건 아니면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일본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든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과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가 맞물리면서 ‘기지건설 반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었다. 현재의 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에 대항하여 같은 자민당 소속인 오나가 다케시 나하 시장이 지사 선거에 기지 반대파 단일후보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키나와현 주민의 81%가 기지 반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기에 나카이마 지사의 3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오키나와인들은 지지정당과 좌우이념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의한 소녀 성폭행 사태, 교과서에서의 집단자결 삭제 문제, 신기지 건설 문제 등 오키나와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섬 전체 투쟁’을 전개하는 항쟁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는 일본과 미국에 의한 이중식민지 체제가 초래한 폭력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오키나와식 평화주의와 함께 자립과 자치에 대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140916134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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