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0

[동규루의 오프닝 멘트]
청소년 시절부터 국가 공안국으로부터 '오음 신리쿄'(한국명 오음 진리교)에 대한 스파이활동을 강요받아온 일본 여성 기타가와 가즈미(29)씨가 절박한 심정으로 북에 망명신청을 하다 결국 불법적으로 입국하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북조선계 재일교포단체인 '조총련'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사연일지. 그 내용을 한 번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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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지난 8월말 망명을 신청한 기타가와 가즈미라는 여성이 일본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와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타가와 가즈미 씨의 망명 동기 등에 관해 도쿄지국의 채명석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합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지난달 28일 일본 여성 1명이 제3국에서 관광여행 중 북한에 불법 입국해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요도호 납치 실행 범들이 북한에 망명한 이래 일본인이 북한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의 큰 관심을 끌어 왔습니다.

일본언론들의 추적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말 북한에 망명을 신청한 여성은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올해 29살의 기타가와 가즈미라는 기혼 여성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20대 초반에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 오사카 시내의 원 룸에 거주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과 일본언론들이 보도한 대로 기타가와 씨가 북한당국으로부터 수차례 망명 신청을 거부당한 후 지난 8월말 두만강에 뛰어들어 북한에 망명을 신청했다면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냐는 의문이 따릅니다. 일본인 납치 사건이 불거진 이후 일본 국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만 크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기타가와 씨가 공안 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했었다는 일본언론들의 보도가 기타가와 씨의 망명 동기를 풀어주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일본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지하철 살인사건을 일으킨 신흥종교 오음 신리쿄에 96년1월 입단하게 됩니다. 그 직후 가타가와 씨는 필로폰 사용 죄로 체포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일본 공안조사청은 이런 경력을 갖고 있는 기타가와 씨에게 97년 여름 경 접근해 오음 신리쿄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해줄 것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 요원들의 강요에 못 이겨 스파이 활동을 수락하고 2001년 여름까지 오음 신리쿄 ,그 후 아레프로 개명한 교단에 대한 내부활동을 염탐해 정기적으로 공안조사청에 보고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공안조사청 요원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 기타가와씨는 이 문제가 공개되고 알력이 격화되자 아레프 교단을 탈퇴함과 동시에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도 단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도 펼쳐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역으로 북한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됐고 일본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기 위해서 일본을 탈출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기타가와 씨는 2년 전 포커스라는 주간지에 "나는 육체적 생명보다는 사회적 생명이나 정치적 생명을 중시하고 싶다.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노예는 되고 싶지 않다. 일본에 공헌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수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이 7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북한으로 건너 간 후 일본의 친지에게 10월5일까지 다섯차례 편지를 보내온 것으로 밝혀졌으며, 10월5자 편지에는 "이달 2일 이쪽 사람들에게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그가 과연 애시당초부터 북한에 정식으로 망명할 의사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조차 들게 합니다.

기타가와씨는 또 북한으로 8월24일 건너간 후 27일부터 평양의 호텔에서 여성 안내원 동무와 24시간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고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베이징의 일본대사관이 북한 대사관을 통해 신원조회를 의뢰해 왔으나 6일 현재까지 북한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회답이 없는 상태라고 아사히 신문이 7일 보도했습니다.

일부보도대로 가타가와 씨가 일본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오음 신리쿄뿐 아니라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해 온 전력이 있다면 기타가와 씨 망명 사건의 파장이 간단히 수습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도쿄에서 RFA 채명석입니다.
© 2004 Radio Free Asia

http://www.rfa.org/korean/in_focus/120186-20031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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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기타가와 씨는 공안조사청의 부탁을 받고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도 펼쳐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타가와 씨는 조총련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역으로 북한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됐고 일본 공안조사청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하기 위해서 일본을 탈출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기타가와 씨는 2년 전 포커스라는 주간지에 "​나는 육체적 생명보다는 사회적 생명이나 정치적 생명을 중시하고 ​싶다.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노예는 되고 싶지 않다. 일본에 공헌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수기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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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규루의 마무리 코멘트]
위 기사에서 발췌한 두 문단, 특히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에서 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요.
기타가와씨 또한 체제와 이념경쟁이 낳은 한 명의 희생양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기타가와 가즈미 씨. 부디 북한에 망명이 받아들여져서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하네요.(프랑스나 캐나다 등으로 갔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것 같지만 말이죠..)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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