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살 구역] 내가 "책언니"를 하는 이유

엠건

10대 때부터 스물, 한 두살 때까지만 해도 나이 어린 생명체들을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과도한 육아에 시달린 부작용이었다. (1편 참조, 동생이 좀 많았다.) 또래 여자애들이 유모차에 실려 멀뚱멀뚱 자기들을 쳐다보는 아가를 보고 귀엽다고 꺅꺅 거릴 때마다, 지금은 얌전하게 방싯방싯 웃고 있는 저 아가가 집에 돌아가면 얼마나 시끄럽게 빽빽거리고 울 지를 상상하며 썩소를 날리던 나였다. 나에게 ‘어린애’란 ‘뽀로로’처럼 귀여운 관상용 캐릭터가 아니라 한번 붙잡히면 체력의 끝을 볼 때까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해야하는 돌봄 노동의 대상이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성가신 일의 싹을 자르고자 아예 애들 근처에 안 갔다. “난 애들 별로 안 좋아해.” 시크한 척 날리는 이 한 마디는 초등학교 때부터 애 보느라 집에 갇혀 살았던 과거는 옛일일 뿐이고,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아름다운 주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책언니"’가 되었다. "책언니"가 되고나서부터는 같은 단체 사람들 빼고는, 여덟 살 아홉 살 꼬마 애들이랑 제일 자주 만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만나는 사람들은 얘들 밖에 없다. 가끔 좀 허탈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만날 ‘우리 꼬맹이들 타령’ 하면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싫어했는데, 결국 또 이런 일을 하게 된 걸 보면 이게 내 팔자인가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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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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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는 일이 다 그러하듯이

나를 포함한 지아의 언니들은 지아를 같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지아의 얘기를 언니들이 배려심 있게 들어주는 거라 여겼다. 그래서 착하게 받아줄 맘이 안 들면 지아에게 ‘저리 가’라고 했다. 사실 어린 지아가 맥락 없이 떠드는 얘기 같은 건 당장 눈앞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일 보다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봐주지 않는 어른들 옆에서 아이들이 안고 사는 뿌리 깊은 외로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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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인권오름 제 414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07일 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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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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