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의무’를 다한 한국 남성들은 그 의무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제대한 후에도 군대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한다. 다시 군인이 되거나, 군인 신분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를 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꿈, 고된 훈련을 받고 있거나 선임에게 괴롭힘 당하는 꿈 등. 필자는 여성이기에 군대에 다녀온 적이 없어 군복무라는 것이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감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성들이 꾸는 ‘군대 악몽’과 같이 필자 역시 반복해서 자주 꾸는 꿈이 있기에 간접적으로나마 쬐끔 이해하겠노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필자가 한 달에 대여섯 번 정도 반복해서, 자주 꾸는 꿈은 바로 ‘교육의 의무’가 남들보다 더 무거웠던 탓인지 뭔지… ‘수능 악몽’이다.

필자는 2009년에 수능을 치고, 재수 후 2010년 수능을 다시 봐 10학번이 되었다. 현재 2013년도 거의 끝날 무렵이니 수능과 필자의 관계는 거의 4년 전에 합의하에 쫑낸 셈이지만 지리지리하게 꿈에 등장해 필자를 괴롭힌다. 당장 내일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인데 아직 시험범위도 채 한 번 훑지 못해서 허둥지둥 한다든가 필자가 다니는 대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등교했더니 그곳은 대학교가 아닌 재수학원이든가 꿈에서조차 필자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는 뜻)’로서 힘든 삶을 살고 있다든가… ‘수능 악몽’ 이 개객끼는 매우 다채로운 모습으로 날 괴롭히지만 어떤 내용의 꿈을 꾸든 꿈에서 필자는 항상 조급하고, 불안하고, 쫓기는 기분이 들고, 나 자신이 보잘 것 없어 보이고, 포기하고 싶은 일관되게 ‘드러운’ 기분을 선사해준다. 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을 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마다 더 자주 찾아온다.

다행인건 단지 꿈이라, 꿈에서 깨고 나면 현실에 안도하고 그 드러운 기분은 훌훌 털어버리려고 노력도 하기 전에 휘발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필자의 ‘수능 악몽’은 꿈에서 깨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 현실에서 ‘악몽’을 꾸고 있는 학생들은 깨버릴 수도 없다.


2013년 9월 보도된 여러 기사에 따르면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실시한 통계 분석 결과 10~19세 인구 10만 명당 자살수가 2001년 3.19명에서 2011년 5.58명으로 10년 사이 57.2% 증가했단다. OECD 회원국의 청소년층 자살률은 2000년 7.7명에서 2010년 6.5명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반해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급증 추세로 증가 속도로는 2위, 총 자살률은 5위이다. 가슴 아프게 증가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충동 이유는 ‘성적 및 진학문제(39.2%)’, ‘가정불화’가 주된 요인이다.

필자도 고등학생 당시 ‘성적 및 진학문제’로 자살까지는 아니지만, 입원은 하되 죽지 않을 정도로만 교통사고를 당해 수능이든 내신 시험이든 미뤄보고 싶은 마음을 자주 가졌다. 하지만 수능과 결별하고 이제 필자 집에서 더 이상 대입 관련 학업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싹 다 잊어버렸다. 필자가 지난 수능의 기억으로 ‘수능 악몽’에서나 느끼는 조급증이 아닌 현실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그 무게감을.

그러던 중 새 학기가 시작되는 올해 3월 어느 저녁, 마을버스에서 악몽을 꾸고 있는 고등학생을 봤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것을 기뻐하던 세 여학생은 같은 중학교 혹은 학원을 다니다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 같았다. 적잖은 기쁨의 비속어와 스킨쉽(?)을 표현하는 걸로 보아 친했던 사이였으리라. 왁자지껄하게 인사 및 안부를 나누던 중 갑자기 한 학생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맥락 없이 눈물을 흘리는 친구 모습에 당황한 다른 학생들은 놀라 “왜 우냐 왜 울어?” 계속 물어봤다.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 학생은 “…힘들어” 대답했다.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어서’ 오랜만에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 그 학생은, 필자 동네에서 세칭 E여대를 많이 보내는 J고등학교 학생이었다. J고등학교는 같은 동네 학교였기 때문에 그 학교가 (소위)명문대(라 불리는 대학교에) 진학을 많이 한 선배들의 치적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면학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그 학생이 흘린 눈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속으로 응원할 밖에. 힘내라고 그리고 그 악몽은 시간만이 깨워 줄 수 있다고. 그 학생에게 미안하게 나의 ‘수능 악몽’은 잠에서 깨버리면 그만인 것에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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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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