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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David & 자가평가

2016. 12. 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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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외로울까

2016. 11. 2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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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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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국 음식이 그리 맛있는 것이 아님을 떠올린다면 그리 불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정규화
:

http://hr-oreum.net/article.php?id=2894


슬로우뉴스의 이나라씨와는 다른 논조.

인권오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함.


슬로우뉴스의 필자 이나라씨는 


3일간의 대테러전이 끝난 후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서 66%의 프랑스인은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하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과반을 훨씬 웃도는 프랑스인이 무슬림과 극단주의 테러리즘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더불어 29%에 달하는 프랑스인이 “이슬람이 프랑스에 위험요소”라고 답한 것에 대해 근심한다.

주류인 프랑스인의 시선으로 66%라는 '놀라운 수치'를 소개했다면

최은아씨는 29%의 차별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위는 이나라씨 글 인용, 아래는 최은아씨 글 인용 --



이 글에선 그렇다면 29%는? 

'이슬람(교인)을 위험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프랑스 사회'를 살아가는 무슬림들은?

하고 소수자의 인권이란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글.

이번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실제적 위협을 느꼈다면,

무슬림들은 지속적인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었음을 상기하고자 함.


무슬림인이 프랑스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험난합니다. 2004년 프랑스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종교 복장을 착용하도록 하는 것을 금지하는 히잡착용금지법을, 2010년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금지하는 브리카금지법을 만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게다가 경제․사회적으로 배제를 겪고 있는 프랑스계 무슬림인에게, 프랑스식 똘레랑스는 과연 존재할까요? 프랑스계 무슬림인에게 똘레랑스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계 무슬림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언제나 그들에게 구조적인 ‘폭력’이었습니다. 이런 맥락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표현의 권력’을 주장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에 동조하는 이들을 '프랑스계 무슬림'으로 단순 치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겠지만..


증오와 혐오를 넘어설 수 있는 우리의 힘

이번 폭력 사태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은 아닐 겁니다. 한국사회도 극단의 시대를 보여주는 징후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도 세계 경제 위기를 피해갈 재간은 없습니다. 이를 틈타 일베 등이 이주자를 향해 끊임없이 내뿜고 있는 혐오와 조롱, 증오 발언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이번 폭력 사태가 혹시 한국사회에 정주하고 있는 이슬람계 이주민을 경계하고 ‘폭력이나 테러’와 연관된 편견으로 강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근 사회적 약자와 권리가 박탈되어 싸우는 사람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 역시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견딜 수 있는, 또 넘을 수 있는 인간존엄에 관한 더 많은 생각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


동삐의 코멘트


"무슬림과 극단주의자들은 구분되어야한다.

테러사건으로부터 무슬림, 이슬람 코드를 읽는 건 무의미할 뿐 아니라 부적절한 행위이다."


"극단주의자들의 테러행위로부터 무슬림이 겪는 차별과 배제를 읽는다.

무슬림들은 주류 프랑스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통계도, 현상들도 이를 잘 보여준다."


는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으며, 어느 한 쪽이 유일한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할 순 없을 것.

다만 이러한 시선들이 프랑스 내에서도 공존하고 있으며,

저마다 테러를 단순하게 혹은 복잡하게 해석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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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퐁파두르 -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자

카테고리 : 그림속 사연들


마담 퐁파두르는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인으로 파리의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잔 푸아송'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음악, 문학 등을 개인 교습 받아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였다. 

그녀는 미모와 교양을 무기로 루이 15세에게 접근하여 1745년, 마침내 스물넷의 나이로 그의 정식 애인이 되었다. 

왕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Edinburgh,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부인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왕비의 측근조차 
“퐁파두르 부인은 내가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하나”라고 토로할 만큼 외모가 뛰어났지만, 그러한 그녀의 외모보다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씨와 교양,사고의 깊이가 왕의 총애를 받는 요인이었다.


(중략)



Francois Boucher,


1756, Oil on canvas, 201 x 157 cm, 

Alte Pinakothek, Munich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보자. 
부셰는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는데 그중 1756년에 그린 그림 속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고 강한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왕의 비서실장처럼 일을 도맡아 했는데, 왕을 정치적으로 돕는 일에는 실패하였으나 예술 문화 분야에서는 성공적이었다.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은 라 투르의 그림보다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고 있으며 주변의 책은 없어지고 단 한 권만을 들고 있다.


(중략)


퐁파두르 부인은 마흔셋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녀는 정적들과의 암투, 매일 밤 계속되는 연회로 지친 몸에 루이 15세의 왕성한 정력으로 매일 밤 시달리다 보니 고작 서른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급격이 나빠졌는데 거기에서 아마도 왕이 지니고 있던 '비너스의 병' 즉 '성병'이 옮겨진 것도 한몫햇다고 해석하는 역사 평론가가 많다. 

퐁파두르 부인은 냉(대하증)이 심해서 뒷물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비데를 새로 고안해서 사용하였다. 

비데는 지금과 같은 분수식이 아니라 뒷물용 대야에 청결 소독제와 향수를 넣어서 사용했는데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비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비데 창시자의 한 명이기도 하다.


Francois Boucher, 
Portrait of Marquise de Pompadour 
1759, Oil on canvas, 91 x 68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악평가가 쓴 묘비문의 소위 '뚜쟁이' 시기에 해당되는 때의 그림을 보자. 이제는 손에 책 대신에 부채를 들고 있으며 옷만 화려하지 몸은 지친 듯하다 
실제로 당시 왕의 정력에 지칠대로 지친 부인은 궁 안에 녹원을 마련하고는 거기에 각처에서 데려온 미녀들을 모아놓고 왕에게 고르게 하여 매일 밤 젊고 매력적인 미녀를 대령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7년간은 뚜쟁이였다는 악평이 나온 것이다. 
1
764년 3월 26일자로 작성된 퐁파두르 부인의 진료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인은 20년 동안 월경을 전후로 하여 심한 두통을 호소하여 왔다. 
그때는 가벼운 변비도 동반되곤 했는데 연하제를 투여하여 좀 나아졌다. 연하제로는 우유를 사용하였다. 최근에 두통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대신 기침이 심해졌다. 기침은 마치 백일해 때의 기침같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곤 했으며 냄새나는 가래도 많이 나왔다. 
부인의 사인은 '심부전'으로 되어 있으나 모든 상황과 임상 증상을 고려해 보면 폐결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서적 :문국진의 <명화와 의학의 만남> 中



사진 및 본문 출처 : http://blog.ohmynews.com/itoon/236491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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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은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섬을 말합니다.

2011년을 기준으로 43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섬은 고대로부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는 요새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섬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장 꼭대기에 신이 있고, 그 아래에 수도원이 있으며, 큰 홀과 상점, 주택들이 배치되어있는 모습으로

그 시대의 봉건사회를 잘 보여줍니다.


해안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간조기에는 육지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수도원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만조기에는 쉽게 방어가 가능한 위치입니다.

몽생미셸은 1979년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으로 매년 3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전문 보기 : http://partell.co.kr/220023534007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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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ddanziNews/1597496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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