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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인권이야기] 로드니 왓슨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전 참전을 거부하고 캐나다로 건너간 어느 미군 이야기

최재훈 


‘그래, 이름이 카일인가 그랬어.’ 이미 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건만, 신기하게도 난 그의 이름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카일 스나이더 일병. 초겨울 캐나다 밴쿠버의 어느 아담한 이층집 거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그것도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게 그와의 인연의 전부였지만, 나는 그 날 그의 흔들리던 눈빛과 불안한 얼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백인 남자들 중에도 이렇게 왜소한 사람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미 공병대 소속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휴가 도중에 캐나다로 훌쩍 도망쳐온 이른바 ‘탈영병’이었다. 그 날 나와 친구들은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랬냐고.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스스로 군대에 지원하긴 했지만, 자신은 정말로 미군이 이라크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는 건 줄 알았다고 말이다. 이라크로 떠나기 전에 이미 조울증을 이유로 조기 전역을 신청했다 퇴짜를 맞은 것도 평소 소심한 성격 탓에 전장에서 버티기 힘들 것 같아 그런 거지, 대통령과 정부가 자신을 속였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한사람씩 돌아가며 그를 안아줬고, 그는 좁은 어깨를 뒤로 한 채 늦은 밤 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두어 달 뒤 그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어느 시골 도시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후로 나는 그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이번 주 느닷없이 그런 과거의 짧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카일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캐나다로 탈출해 5년 넘게 밴쿠버의 어느 좁은 교회 안에서 지내고 있는 미 육군 특기병 출신의 로드니 왓슨이란 병사의 기구한 사연을 접하게 된 때문이었다. 미국 남부 캔자스에서 자란 왓슨은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동차 선적을 검사하는 꽤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젊은이였다. 그러다 회사 사정으로 갑자기 해고된 뒤 저임금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고,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다 주위의 다른 흑인 친구들처럼 자기도 마약이나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대안은 군에 입대하는 것이었다. 3년간 군에서 받은 월급을 착실하게 모으면 작은 식당이라도 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게다가 원래부터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속 부대가 이라크로 파병될 때도 별다른 양심의 거리낌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직접 가서 목격한 이라크와 미군의 실상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주특기가 취사병이었음에도 전투병으로 배치된 그는 이라크 주민들을 ‘사막의 깜둥이’라고 경멸하는 주위 동료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차를 세우게 한 뒤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자신에게 ‘깜둥이’이라고 욕설을 내뱉던 캔자스의 백인 경찰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헬멧과 방탄조끼에 성경 문구를 가득 적은 채 부대 밖으로 나가서 이라크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대는 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행위라 믿는 부대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던 2006년 2월의 어느 날, 티크리트 북쪽의 부대 앞에서 경비를 서던 왓슨은 미군 응급 차량 한 대가 배에 총상을 입은 11살짜리 이라크 소년을 정문 앞에 내려놓는 걸 목격하게 된다. 현장에서 소년의 몸을 수색하고 심문한 미군들은 아무런 무기나 폭탄도 발견되지 않고 반군 첩자도 아니란 사실이 확인되자, 그를 모래 바닥에 내팽개친 채 그냥 부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급히 지휘소에 무전으로 의무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왓슨에게 되돌아온 대답은 아무 조치도 하지 말고 초소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왓슨은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년이 모래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위에서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왓슨의 부대는 일 년의 파병 기간을 채우고 미국으로 복귀했다. 그와 더불어 전역을 불과 몇 달 남겨둔 왓슨은 제대 이후의 삶을 설계하며 이라크에서의 기억을 지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신규 입대 병력이 모자라 전전긍긍하던 미국 정부는 모든 현역 군인들의 복무 기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손실 방지(Stop-loss)' 정책을 도입하고 왓슨에게도 일 년 간 다시 이라크에서 복무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왓슨은 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절대 이라크로 돌아갈 수는 없어.’ ‘하지만 명령을 거부하면 내 인생 전부가 물거품이 될 텐데?’ 결국 왓슨의 최종 선택은 복귀 예정일에 부모님께 ‘곧 전화할게요’란 한마디를 남긴 채 캐나다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에는 양심을 이유로 이라크전 참전을 거부한 뒤 그 나라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던 60여 명 가운데 아직 강제 송환되지 않은 스무 명 남짓의 ‘왓슨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각자의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외에 망명을 신청하지 않고 숨어서 지내는 미군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모두 2백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미국과 캐나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애초부터 자원해서 군에 입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가 아니라 군법을 어긴 탈영병이며 범죄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왓슨을 비롯한 미군 ‘전쟁 저항자들(war resisters)’의 목소리에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면, 과연 그들을 그렇게 범죄자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조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걸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대다수 미국 국민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도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거죠. 그러나 군에 입대했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난 이라크 전쟁이 잘못이란 걸 깨달았고, 싸우기를 거부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 여겼습니다.”(로빈 롱, 2005년 부대 이탈, 2008년 강제 송환)

“아직도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군인을 붙잡고 ‘제발 그만해’라고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위에다 보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과 몸과 영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노’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말이죠.”(로드니 왓슨)

앞서 언급했듯이, 왓슨은 현재 한 목사의 도움으로 밴쿠버의 어느 교회 안 이층 단칸방에서 부인이랑 아들과 함께 만 5년이 넘는 긴 시간을 사실상 갇힌 채 지내오고 있다. 앞으로 언제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기약조차 없다. 밖에서는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그를 체포해가기 위해 캐나다 이민국 관리들이 24시간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십여 년 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전쟁 반대의 외침이 거의 잦아든 오늘, 여전히 부당한 침략전쟁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왓슨들’이 있음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최재훈 님은 '경계를 넘어' 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18 호 [기사입력] 2014년 12월 06일 15:24:48 


http://hr-oreum.net/article.php?id=2866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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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조원 먹튀, 중국의 여우사냥"


해외로 도망간 중국 관료 약 18000명…우리 돈으로 3000조 원이 넘는 돈 가지고 떠나

- 해외로 내뺀 도피공무원 잡는 여우사냥, 대규모의 검거 진행되면서 첩보작전 벌어져 
- 중국은 기러기 공무원들을 주요공직에서 배제하기도. 
- 여우사냥 진행하는 중국 공산당 기율위, 비인도적 방법 때문에 외국과 마찰 발생해. 
- 중국정부는 세상끝까지 가서라도 잡아오겠다. 하지만 근절은 쉽지 않아 보여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11월 21일 (금) 오후 7시 2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선경 (CBS 중국 특파원)


(전략)

◆ 김선경> 중국 공산당 기율위는 지난 7월부터 4명이 1개 조로 구성된 32개 조를 40여 개 국가에 파견했습니다. 이를 여우 사냥꾼이라 부르는데 중국은 검거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38개 국가와 범죄인 인도조약까지 맺었습니다. 지금 5개월째가 돼 가는데 지금까지 여우사냥꾼들은 288명의 부패 공무원과 경제 사범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진행되면서 첩보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도피 행각들도 공개되고 있습니다. 공금 4천만위안, 약 72억원을 들고 동남아로 도망갔던 중국 공상은행 회계담당자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무려 29개의 가짜 신분증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68일간 도피행각을 벌이다 잡혔는데 이 신분증을 모두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재주가 놀랍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정관용> 해외도피 전에 사전에 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김선경> 중국 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요. 중국 공산당은 최근 아내나 자식을 해외로 이주시킨 기러기 공무원 이를 뤄관(裸官)이라고 부르는데 기러기 공무원을 주요 공직에서 배제하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는 등 방지책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붙잡힌 중국은행에서 근무하던 한 도피인사는 도피 전에 18차례나 캐나다에 출장을 다녀오며 도주 경로를 주도면밀하게 계획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많다고 해도 도둑을 막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후략)


기사 전문 보기 : http://photo.nocutnews.co.kr/news/4330726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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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파병 50년, 강요된 경계 넘기


등록 : 2014.09.21 18:41 | 이유진 기자 

역사문제연구소, 강연 등 행사

역사문제연구소는 올해 베트남전쟁 파병 50주년을 맞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 다양한 경계넘기’ 행사를 마련했다.


2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돌아온 술주정뱅이>(오시마 나기사 감독, 1968)를 상영한 데 이어, 25일 저녁 7시 서울 제기동 역사문제연구소 강당에서는 ‘전쟁 거부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을 주제로 세키야 시게루 전 자테크(JATEC) 활동가의 강연을 연다. 자테크는 ‘반전 탈주 미군병사 원조 기술위원회’의 약자로, 일본 내 미군 탈영병의 망명을 돕기 위해 은신·도피·망명 기술을 개발하는 반전 시민운동 조직이었다.


당시 일본의 대표적 베트남반전운동 단체였던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이 따로 만든 자테크는 열린 시민운동을 지향했으며 ‘탈영’을 사회적 연대의 계기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번에 초청된 강연자 세키야 시게루씨는 초창기부터 자테크에 참여한 인물로, 당시 활동 기록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27일 오후 2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베트남전과 아시아의 상상력’ 학술회의를 연다. 김예림 연세대 교수가 ‘냉전기 아시아 상상의 정치학과 베트남전’을, 정영신 제주대 교수가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오키나와 반기지 운동의 관련성’, 백승욱 중앙대 교수가 ‘리영희의 국제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각각 발표한다.

역사문제연구소는 “반전운동을 통해, 또는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상을 통해, 강요된 경계를 지워가며 서로 연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우리 앞에 놓인 경계의 실체를 역사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전쟁의 ‘현재’를 직시하고 해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56091.html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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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평화주의 신념과 동성애 지향'을 이유로 병역거부 를 한 김경환(30)씨의 캐나다 망명이 한국에서 병역거부를 둘러 싼 논란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밴쿠버 중앙일보는 지난 2009년 7월 6일 캐나다 이민ᆞ난민심 사위원회(IRB)가 김 씨의 난민지위를 부여한 결정문을 긴급입수 해 전문을 싣는다.[밴쿠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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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망명] 이민 및 난민 위원회 난민 보호 분과 RPD File / No. dossier SPR : MA6-0428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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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보기 : http://www.joongang.ca/m/bbs/board.php?bo_table=g100t100&wr_id=842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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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상황에서 자기는 군대 갔다 왔다고 말함 ㅋㅋㅋ

나는 동성애자 인권은 지지하지만... 나는 이성애자라니까요?

ㅋㅋㅋㅋㅋ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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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렇게 6페이지 뜸 (어제 방문자 151건 중 120명이 해당 검색어로 들어옴.)


다들 군대 안 가고 싶긴 한가보다. 아님 갔다 왔으니(갈 거니까, 남자였으면 갔을 거니까욕하고 싶거나.

연재기사 나올 때마다 유입 폭발함.



원래는 성적인 키워드(ㅈㅇ, 남친이랑, 썰베 따위)랑 독신으로 살겠다, 오토바이, 태국 관련 유입 순으로 조금씩 나와서

네이버 검색으로 100 내외, 다음, 구글, 티스토리 등 합쳐서 50이내 이정도 나왔던건데.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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