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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

마담 퐁파두르 -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자

카테고리 : 그림속 사연들


마담 퐁파두르는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인으로 파리의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잔 푸아송'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음악, 문학 등을 개인 교습 받아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였다. 

그녀는 미모와 교양을 무기로 루이 15세에게 접근하여 1745년, 마침내 스물넷의 나이로 그의 정식 애인이 되었다. 

왕은 그녀에게 정식으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Edinburgh,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부인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왕비의 측근조차 
“퐁파두르 부인은 내가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하나”라고 토로할 만큼 외모가 뛰어났지만, 그러한 그녀의 외모보다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씨와 교양,사고의 깊이가 왕의 총애를 받는 요인이었다.


(중략)



Francois Boucher,


1756, Oil on canvas, 201 x 157 cm, 

Alte Pinakothek, Munich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보자. 
부셰는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는데 그중 1756년에 그린 그림 속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고 강한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왕의 비서실장처럼 일을 도맡아 했는데, 왕을 정치적으로 돕는 일에는 실패하였으나 예술 문화 분야에서는 성공적이었다.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은 라 투르의 그림보다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고 있으며 주변의 책은 없어지고 단 한 권만을 들고 있다.


(중략)


퐁파두르 부인은 마흔셋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녀는 정적들과의 암투, 매일 밤 계속되는 연회로 지친 몸에 루이 15세의 왕성한 정력으로 매일 밤 시달리다 보니 고작 서른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급격이 나빠졌는데 거기에서 아마도 왕이 지니고 있던 '비너스의 병' 즉 '성병'이 옮겨진 것도 한몫햇다고 해석하는 역사 평론가가 많다. 

퐁파두르 부인은 냉(대하증)이 심해서 뒷물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비데를 새로 고안해서 사용하였다. 

비데는 지금과 같은 분수식이 아니라 뒷물용 대야에 청결 소독제와 향수를 넣어서 사용했는데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비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비데 창시자의 한 명이기도 하다.


Francois Boucher, 
Portrait of Marquise de Pompadour 
1759, Oil on canvas, 91 x 68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악평가가 쓴 묘비문의 소위 '뚜쟁이' 시기에 해당되는 때의 그림을 보자. 이제는 손에 책 대신에 부채를 들고 있으며 옷만 화려하지 몸은 지친 듯하다 
실제로 당시 왕의 정력에 지칠대로 지친 부인은 궁 안에 녹원을 마련하고는 거기에 각처에서 데려온 미녀들을 모아놓고 왕에게 고르게 하여 매일 밤 젊고 매력적인 미녀를 대령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7년간은 뚜쟁이였다는 악평이 나온 것이다. 
1
764년 3월 26일자로 작성된 퐁파두르 부인의 진료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인은 20년 동안 월경을 전후로 하여 심한 두통을 호소하여 왔다. 
그때는 가벼운 변비도 동반되곤 했는데 연하제를 투여하여 좀 나아졌다. 연하제로는 우유를 사용하였다. 최근에 두통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대신 기침이 심해졌다. 기침은 마치 백일해 때의 기침같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곤 했으며 냄새나는 가래도 많이 나왔다. 
부인의 사인은 '심부전'으로 되어 있으나 모든 상황과 임상 증상을 고려해 보면 폐결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서적 :문국진의 <명화와 의학의 만남> 中



사진 및 본문 출처 : http://blog.ohmynews.com/itoon/236491


Posted by 정규화
:

재미 없다.

2013. 2. 2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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