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인권이야기] 멕시코 사회도 묻는다, “이것이 국가인가”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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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직후에 발행된 어느 시사 주간지의 표지 제목이었다. 당시 이 땅에 사는 이라면 거의 모두가 그 문구를 본 순간,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며 기나긴 한숨을 토해냈을 것이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가장 앞장서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국가, 혹은 정부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천 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질 가능성은 아직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사실은 그런 절망감을 비단 우리만이 아닌, 오늘날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납치된 219명의 딸들이 과연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나날들을 일곱 달째 이어가고 있는 나이지리아 치복 시의 부모들과, 낡은 탄광에서 일어난 5월의 폭발 사고로 300명이 넘는 광부들이 지하 갱도에서 속절없이 질식해 죽어가는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터키의 시민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최근 거기에 또 하나의 사례가 덧대어졌다. 교사를 꿈꾸던 43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집단 납치돼 실종된 멕시코 사회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위 사진:출처: 비비씨 화면캡처 -민중언론 참세상 재인용

현재까지 전해진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난 9월 26일, 멕시코 남부 게레로 주의 틱스틀라 시에 있는 교육대학교 학생들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이 열리기 열흘 전 군과 경찰의 발포로 3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살해된 틀라텔롤코 학살 추모 시위에 참여할 재정을 모금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주도인 칠판싱고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경찰이 도로를 가로막아 그들은 인근 이괄라 시로 버스를 돌리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 도시의 시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생들을 막으라고 지역 경찰에게 지시를 내렸고, 잠시 뒤 학생들이 탄 버스에 무차별적인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6명이 즉사했고, 25명이 부상당했으며, 살아남은 학생들은 인근 야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경찰들과 평상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모두 43명의 학생들이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갔고, 그 뒤로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난 11월 7일, 헤수스 무리요 카람 연방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43명의 실종 학생들 모두가 ‘단결된 전사들(Guerros Unidos)'이라는 마약범죄조직원들에 의해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해된 뒤 불태워졌다고 발표했다. 폭력배들에게 학생들을 넘긴 건 다름 아닌 그들을 체포했던 경찰들이었으며, 경찰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건 이괄라 시의 시장이었다는 충격적인 수사 결과도 덧붙였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검찰총장이 폭력단원들의 자백이 녹음된 음성 파일을 직접 들려주고 불에 탄 유골과 치아 화면을 영상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단순히 학생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게레로 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지방정부와 경찰들이 지역의 범죄조직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유지해왔고, 중앙정부는 그걸 철저히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해왔던 추잡한 실상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 정부가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날 기자회견장에서 검찰총장은 마약범죄조직원들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사건의 본질을 그저 멕시코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조직폭력 사건의 하나로 몰아감으로써 주지사나 대통령에게까지 책임과 비판의 화살이 날아가는 상황을 차단하려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수사발표 이후에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혀 거두지 않고, 더 강하게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이미 사흘 동안 전국적 차원의 동맹휴업을 벌였고, 시민들 수십만 명이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족들의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들은 이번 집단실종 사건을 멕시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관료-범죄조직 간의 공생관계와 경찰들의 인권침해, 그리고 불처벌의 관행을 완전히 도려내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멕시코의 속담을 빌자면 “옥수수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그 옥수숫대를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라진 자식들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부모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고위 권력자들의 공감능력 부족도 강하게 질타한다. “이제 그만하시죠. 나도 피곤합니다” 라며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간 검찰총장이나, 이 와중에도 APEC 정상회담을 핑계 삼아 중국으로 훌쩍 날아가 버린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며 멕시코의 국민들이 느꼈을 참담함과 분노가 특히나 이 땅의 우리들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날들이다.
덧붙이는 글
최재훈 님은 '경계를 넘어' 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4일 12:02:41





Posted by 정규화
: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군사기지 건설 반대 ‘섬 전체 투쟁’ 불붙나

2014.09.23주간경향 1093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8월 말에 일주일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오키나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과 현장의 분위기를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간의 ‘온도차’가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각의에서 결정한 이후 17년간 쟁점이 되었던 후텐마 기지의 북부 헤노코로의 이전이 공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결정 당일 오키나와 현지의 양대 언론인 <류큐신보>와 <오키나와 타임스>는 이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류큐신보>는 각의에서의 해석 변경이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쿠데타적 발상이며, 이 사태는 결국 오키나와를 또 다른 전쟁위협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으로 만들 텐가”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8월 14일 오키나와 나고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해상시위를 벌이다 일본 해안경비대에 제지당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해상보안청 보트가 카누시위대 압박
‘악마의 섬’이라는 표현은 수사적인 것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의 점령 이후 현재까지 오키나와는 사실상 미국의 군사식민지로서의 성격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전쟁에 오키나와의 군사기지가 사실상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걸프전과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전폭기가 발진한 곳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였다. 베트남전쟁 시기 오키나와는 ‘악마의 섬’으로 불렸다. 베트남인들은 오키나와에서 발진해 맹폭을 퍼붓는 폭격기를 저주하면서 동시에 오키나와도 저주했다. 중세 중국인들이 오키나와라는 발음과 유사한 음차표기를 사용해 악귀도(惡鬼島)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베트남인들이 전쟁 당시의 오키나와를 실제로 ‘악마의 섬’으로 불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인들은 자신들이 태평양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체험했기에 그 어떤 민족보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반전집회가 계속되었으며,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미군들을 보호해주고 망명시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인들은 미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희생되었다. 섬 주민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된 전쟁의 비극은 오키나와인들에게 ‘군대는 국민을 지키지 않는다’는 교훈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반전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노골화하고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향후 200년간 활용할 것이라며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노골적으로 강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오키나와 방위국은 해상기지 예정지인 오우라 만 매립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본 본도에서 용역들을 불러와 기지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고, 해상에서는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주민들의 카누시위를 압박, 연일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헤노코 신기지 반대행동은 나고 시민들의 현장투쟁에서 더 나아가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내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8월 23일에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8·23 현민 대행동이 있었다. 나는 8월 22일과 23일 양일간에 걸쳐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부 앞 정문과 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지 반대행동을 취재할 수 있었는데, 주민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8월 22일 주민들의 감시선인 평화호를 타고 현민들의 해상 카누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오우라 만으로 나아갔다. 일본의 해상보안청 경비선들이 기지 건설구역을 표시하는 부표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고, 해상에는 대형 구축함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10여척 이상의 카누를 타고 기지 건설현장을 대응감시하고 있었는데, 해상보안청 소속 모터보트가 카누시위대에 바짝 붙어 공세적으로 압박하는 풍경을 자주 보았다.

오는 11월 지사선거에 최대 이슈로
그날 평화호에는 야마우치 쓰에코, 아라가키 세이료 오키나와 현의원, 지역 언론 취재기자,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인 마이클과 내가 동승했는데, 취재·조사를 목적으로 배에 타고 있는 우리에게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강한 경고방송과 충돌위협을 거듭하면서 카메라로 우리들을 채증했다.

캠프 슈와부 정문에는 약 80명의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면 류큐대학과 오키나와대학을 포함한 오키나와의 대학생들이 다수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어린 중·고생들도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그들은 기지 앞에서 상주하면서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 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이 역으로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실제로 8월 23일 오후 1시 캠프 슈와부 정문 앞에서 진행된 ‘8·23 현민 대행동’에는 3600여명의 오키나와 현민들이 집회에 참여해 기지 건설에 항의했다. 캠프 슈와부가 위치해 있는 북부 나고시 헤노코로 이동하기에는 교통과 주차시절 모두가 빈약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본도 각 지역에서 30대의 임대버스를 타고 현민들이 운집한 셈인데, 헤노코 투쟁이 시작된 이후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집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고 집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오키나와 현민들의 ‘섬 전체 투쟁’이 다시 촉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은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에 있을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는 반기지운동 측에서건 아니면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일본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든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과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가 맞물리면서 ‘기지건설 반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었다. 현재의 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에 대항하여 같은 자민당 소속인 오나가 다케시 나하 시장이 지사 선거에 기지 반대파 단일후보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키나와현 주민의 81%가 기지 반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기에 나카이마 지사의 3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오키나와인들은 지지정당과 좌우이념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의한 소녀 성폭행 사태, 교과서에서의 집단자결 삭제 문제, 신기지 건설 문제 등 오키나와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섬 전체 투쟁’을 전개하는 항쟁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는 일본과 미국에 의한 이중식민지 체제가 초래한 폭력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오키나와식 평화주의와 함께 자립과 자치에 대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1409161343041

Posted by 정규화
:

요리교실 오늘의 메뉴는 부대찌개 였음.
오늘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베트남학생들도 다 빠지고 일본인 친구들도 한명빼고 다 안 옴. 그래서 15명 정원에 6명이서 수업함. 그래서 모둠도 5모둠이던걸 3모둠으로 나눴고 양은 두배씩 만듦. 그런데도 콩나물은 한 상자(한 5키로 정도?) 와서 상당량이 남음.
글서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이 하는 거 먼저 한번 보고 그다음 지도받으면서 재료준비~조리까지를 해야 하므로 내게 특별임무를 줌.
여기서나 하는 말이지만 울 선생님은 좀 훌륭한분이고 착한데다 센스쟁이이심.
그래서 콩나물을 데치기부터 장갑끼고 무치고 사람수대로(선생님 까지 7인) 나누는 일까지 그냥 나한테 맞김.
냄비에서 김 많이 날 때 불 끄라고 한 거랑 버무릴 때 잘 버무리는 방법만 알려줌.


뚜껑 닫고 삶았고, 김 많이 날 때 불 끔. 완전히 익진 않고 약 70%정도 익음. 그러니 아삭한게 맛이 좋음.
양념은 간장 고춧가루 후추 소금으로 하고 깨 뿌리고 마늘 썰어넣음.
간장은 안 넣어도 된다고 함.


완성해서 나눠 담은 모습.
첩엔 싱겁고 좋았는데(진짜 짱 맛있었음.) 음식을 이렇게 많이 해본게 처음이다보니 선생님 말대로 간을 맞추려다가 소금을 한번에 3큰술정도? 아무튼 재지도 않고 저 통을 들고 탈 탈 탈 털어서 넣음.
그리고 엄청 짜짐. 태국반찬만큼 짜짐. 그치만 그 이상은 아님 ㅋㅋ
씻고 다시 무치거나 물 부어서 희석시키려다가 내 첫 7인분짜리 반찬을 기념하려고 걍 줌. 엄청 짜다고 말은 해줌. 일단 맛은 선생님이랑 중국인 친구 춘화씨만 봄.

맛있게 드세요. 짜니까 밥 두그릇 드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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