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친미만을 강요하는 한국식 전체주의

리퍼트 기습사건과 한국사회

명숙
반미는 상상불가능한 사회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이 내놓은 둘째로 많은 해석이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만이 아니라 한국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도 이 프레임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사건 다음날 대통령은 "이번에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반미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친미'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약소국을 침략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긴장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도 우리는 ‘친미’를 주장해야 하냐고. 한미동맹이라는 것이 그저 나라 간의 우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기본 전제로 한 것이라면 우리는 한미동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이 우선이라면 전쟁을 전제로 한 친미가 아니라, 평화를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이 우리의 선택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국제경제와 정치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군사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식민지화했던 일본 정부의 재무장에 대해서도 침묵한 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사일방어체제(MD)는 냉전 시기 소련과 중국의 핵무기가 미국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요격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은 가까워서 저(低)고도 미사일로 충분한데도,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제인 사드(THAAD)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반대해왔다. 얼마 전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촉구를 민족주의로 치부하며 잊자고 망발을 한 이유도 한‧미‧일 군사공조를 성사시키고 싶어서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이 취해야하는 태도는 좀 더 주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시대 왕조가 명과 청 사이에서 사대주의를 취하거나, 구한말 열강들 사이에서 정부가 갈팡질팡하며 백성을 져버렸던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외교적‧군사적 관계는 무조건적인 ‘친미’가 필요한 게 아니다. 아니 한발 양보해서 친미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친미만을 강요하는 ‘전도된 전체주의’

자유민주주의는 곧 친미라는 정부의 접근은 셸던 월린의 책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떠올리게 한다. 월린은 미국의 역사와 부시 대통령의 집권과정과 정치를 분석하면서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도된 전체주의’라고 명명했다. 9‧11테러 이후 반공이데올로기와 공포정치는 민주주의를 애국주의로 탈바꿈시켰고, 사영화(私營化)된 언론에 의해 시민들의 비판의식은 잠식되어 수동적인 시민들이 양산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는 정치권력과 기업권력에 의한 ‘전도된 전체주의’로 나아갔다고 보았다. 그는 나치즘과는 다른 현대 미국사회의 전체주의 경향을 그렇게 표현했다. 지금 민주당 오바마가 집권했다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미국은 IS 공습과 사드(THAAD) 배치 등 테러와의 전쟁을 강조하며 군수산업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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