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성영어

2015. 2. 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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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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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①

검은빛, 공현, 쥬리

[편집인 주]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2015년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활동가마당’이 열렸습니다. 지난 2014년에 처음 ‘청소년활동가마당’을 연 뒤 횟수로 두 번째였습니다. 청소년활동가마당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청소년운동의 의제나 활동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로 열린 활동가대회 성격의 행사입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는 그 제목 그대로 청소년운동의 현주소와 청소년활동가들의 현재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로, 청소년활동가들 30여 명이 각 단체의 활동을 공유하고,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의 마지막 순서는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셋째날에 기획단이 미리 준비해온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 초안을 놓고 수정 및 보완하는 토론을 했으며, 참여자 중 자신의 이름이 이 선언에 명기되는 것에 동의한 활동가들의 연명으로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기획단에서 굳이 선언을 제안하고 채택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별 단체 소속을 넘어 ‘청소년활동가’로서, 함께 청소년운동의 목표와 현재를 명문화된 형태로 발표하자. 둘째, 새로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안내해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자. 셋째, 청소년운동과 부대끼고 있거나 청소년운동을 잘 모르는 다른 운동/활동가들에게 청소년운동에 대한 내용을 좀 더 합의된 형태로 제시하자. 청소년운동의 단체와 흐름들이 다양해지면서, 한 단체의 강령이나 운동원칙 합의 정도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선언은 총 11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이 그간 논의해온 수많은 의제들과 고민들을 모두 내용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적으로 함께 인식해야할 중요성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만들게 됐습니다.

선언의 전반부는 주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청소년에 관련된 단체나 활동이 여러 종류가 있고 ‘청소년’ 자체의 개념도 모호한 까닭에 대체 무엇이 또는 어디까지가 청소년운동인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선언을 통해서 청소년운동의 정의와 방법론 등 그 중심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청소년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는 내용이 있습니다. 운동의 정체성이란 다른 이들과의 관계나 외부로부터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을 보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고, 청소년운동의 정치성과 독립성, 연대성 등의 원칙과 성격을 적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그 이름 그대로 2015년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발전한 내용을 담은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통해 청소년운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길 바라는 한편으로 그런 변화의 여지 또한 염두에 두시길 청합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

지금 우리의 청소년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청소년운동은 쌓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목소리와 실천을 바탕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운동의 존속에만 급급하던 시대를 넘어, 이에 더해 발전과 변화 또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해방을 위한 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해 있는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청소년운동 안팎으로 알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참여하여 청소년운동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를 마무리하며, 우리들은 각자의 소속 단체를 떠나서, 한 사람의 청소년활동가로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서있는 위치와 걸어갈 방향, 그리고 걸음걸이를 밝히고자 한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 차별, 폭력, 착취에 저항하며, 청소년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청소년의 정의)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은 사회에 의해 ‘미성년’이라고 구분되는 모든 사람들이다. 연령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제도적․관습적․문화적 구분의 기준이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를 결정한다. 그 범위는 대개 만18세~20세 미만이 되며, 경우에 따라 더 적은 나이나 더 많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3. (청소년의 성격) 청소년은 소수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집단이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은 사회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으나, 모든 청소년은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며 모든 비청소년은 한때 청소년이었다. 또한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계급성을 가지지만, 그러면서도 속한 가족의 계급의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은 한 마디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채 유예된 존재이다. 청소년운동은 단지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할 뿐 아니라, 특정 연령의 사람들을 ‘청소년’으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현상과 사회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국가와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며,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 또는 미래를 준비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청소년억압은 신체적・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을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춰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억압의 대표적인 사회구조는 학교와 가족이다. 학교제도는 청소년이 자본주의적인 경쟁 및 차별 논리,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다. 현 가족제도는 청소년을 친권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고 양육과 생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계급을 재생산한다. 학교와 가족뿐만 아니라 비청소년 중심의 각종 제도와 문화 역시 청소년억압의 중요한 요소이다.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청소년들은 단일한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계급, 성(性), 사상 및 이념, 신체적 상황, 그밖에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자 다른 억압을 경험한다. 청소년은 여러 차원의 중첩된 억압을 겪는 존재이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다양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저항한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이다. 청소년 당사자가 정치적인 힘을 가진 주체로 나서고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세력이 되는 것은 청소년해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수의 엘리트나 ‘선한 어른들’이 청소년해방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에 반대한다. 나이주의는 연령에 따른 위계, 나이에 따른 차별 등의 문화와 제도를 가리킨다. 청소년들은 나이주의에 의해 사회 전반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기에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나이주의는 운동사회에도 존재하며, 그로 인해 청소년활동가들은 동등한 활동가로서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이 나이를 이유로 운동의 참여가 제한되거나 업무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활동가로서 존중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지향한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회를 운영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겪는 일상적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에 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정치적인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정치적 활동이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반대한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은 다른 운동에 종속되지 않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에 ‘배후’가 있다고 여기거나,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비청소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자 거짓이다. 또한 청소년운동은 다른 사회운동의 ‘준비과정’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므로 청소년의 사회적 참여는 당연한 것이지 특별하거나 대견한 일이 아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영역을 가진다. 청소년억압은 다른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관점에 의한 정세 판단과 가치 기준, 우선순위를 갖고 활동한다.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청소년해방은 인간해방과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년억압은 우리 사회의 각종 억압적인 구조와 제도,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우리 사회의 인간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한다. 그리고 인간해방과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위해 청소년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청소년운동의 지향을 함께 선언하며,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모든 청소년의 해방을 향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와 단체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위한 단결의 필요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고유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청소년해방은 전체 사회구조의 변혁과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활동가이고, 우리의 옆에는 청소년해방을 함께 이루어낼 동료가 있다. 우리는 더욱 많은 청소년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2015년 1월 15일
※ 이름 뒤의 단체명은 참여자의 소속 단체를 참고삼아 알리기 위한 것이며,
해당 단체가 공식 입장으로 이 선언에 참여했다는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검은빛(관악청소년연대여유), 공현(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난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델라(관악청소년연대여유), 둠코(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루블릿(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마카롱(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목성돼지(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미쁨(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박씨(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별다(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선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윤서(희망의우리학교), 이응이, 자유(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최준호(중고생연대), 치이즈(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플린(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필부(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하루유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호야(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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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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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인권이야기] 멕시코 사회도 묻는다, “이것이 국가인가”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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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직후에 발행된 어느 시사 주간지의 표지 제목이었다. 당시 이 땅에 사는 이라면 거의 모두가 그 문구를 본 순간, ‘그래, 맞는 말이야’ 하며 기나긴 한숨을 토해냈을 것이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가장 앞장서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국가, 혹은 정부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천 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질 가능성은 아직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사실은 그런 절망감을 비단 우리만이 아닌, 오늘날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세계 곳곳의 시민들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납치된 219명의 딸들이 과연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나날들을 일곱 달째 이어가고 있는 나이지리아 치복 시의 부모들과, 낡은 탄광에서 일어난 5월의 폭발 사고로 300명이 넘는 광부들이 지하 갱도에서 속절없이 질식해 죽어가는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터키의 시민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최근 거기에 또 하나의 사례가 덧대어졌다. 교사를 꿈꾸던 43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집단 납치돼 실종된 멕시코 사회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위 사진:출처: 비비씨 화면캡처 -민중언론 참세상 재인용

현재까지 전해진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난 9월 26일, 멕시코 남부 게레로 주의 틱스틀라 시에 있는 교육대학교 학생들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이 열리기 열흘 전 군과 경찰의 발포로 3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살해된 틀라텔롤코 학살 추모 시위에 참여할 재정을 모금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주도인 칠판싱고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경찰이 도로를 가로막아 그들은 인근 이괄라 시로 버스를 돌리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 도시의 시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생들을 막으라고 지역 경찰에게 지시를 내렸고, 잠시 뒤 학생들이 탄 버스에 무차별적인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6명이 즉사했고, 25명이 부상당했으며, 살아남은 학생들은 인근 야산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경찰들과 평상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모두 43명의 학생들이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갔고, 그 뒤로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난 11월 7일, 헤수스 무리요 카람 연방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43명의 실종 학생들 모두가 ‘단결된 전사들(Guerros Unidos)'이라는 마약범죄조직원들에 의해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해된 뒤 불태워졌다고 발표했다. 폭력배들에게 학생들을 넘긴 건 다름 아닌 그들을 체포했던 경찰들이었으며, 경찰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건 이괄라 시의 시장이었다는 충격적인 수사 결과도 덧붙였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검찰총장이 폭력단원들의 자백이 녹음된 음성 파일을 직접 들려주고 불에 탄 유골과 치아 화면을 영상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단순히 학생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게레로 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지방정부와 경찰들이 지역의 범죄조직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유지해왔고, 중앙정부는 그걸 철저히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해왔던 추잡한 실상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 정부가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날 기자회견장에서 검찰총장은 마약범죄조직원들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사건의 본질을 그저 멕시코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조직폭력 사건의 하나로 몰아감으로써 주지사나 대통령에게까지 책임과 비판의 화살이 날아가는 상황을 차단하려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수사발표 이후에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혀 거두지 않고, 더 강하게 이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이미 사흘 동안 전국적 차원의 동맹휴업을 벌였고, 시민들 수십만 명이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족들의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들은 이번 집단실종 사건을 멕시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관료-범죄조직 간의 공생관계와 경찰들의 인권침해, 그리고 불처벌의 관행을 완전히 도려내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멕시코의 속담을 빌자면 “옥수수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그 옥수숫대를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사라진 자식들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부모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고위 권력자들의 공감능력 부족도 강하게 질타한다. “이제 그만하시죠. 나도 피곤합니다” 라며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간 검찰총장이나, 이 와중에도 APEC 정상회담을 핑계 삼아 중국으로 훌쩍 날아가 버린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며 멕시코의 국민들이 느꼈을 참담함과 분노가 특히나 이 땅의 우리들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날들이다.
덧붙이는 글
최재훈 님은 '경계를 넘어' 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4일 12:02:41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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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여덟살 구역] 내가 "책언니"를 하는 이유

엠건

10대 때부터 스물, 한 두살 때까지만 해도 나이 어린 생명체들을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과도한 육아에 시달린 부작용이었다. (1편 참조, 동생이 좀 많았다.) 또래 여자애들이 유모차에 실려 멀뚱멀뚱 자기들을 쳐다보는 아가를 보고 귀엽다고 꺅꺅 거릴 때마다, 지금은 얌전하게 방싯방싯 웃고 있는 저 아가가 집에 돌아가면 얼마나 시끄럽게 빽빽거리고 울 지를 상상하며 썩소를 날리던 나였다. 나에게 ‘어린애’란 ‘뽀로로’처럼 귀여운 관상용 캐릭터가 아니라 한번 붙잡히면 체력의 끝을 볼 때까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해야하는 돌봄 노동의 대상이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성가신 일의 싹을 자르고자 아예 애들 근처에 안 갔다. “난 애들 별로 안 좋아해.” 시크한 척 날리는 이 한 마디는 초등학교 때부터 애 보느라 집에 갇혀 살았던 과거는 옛일일 뿐이고,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아름다운 주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책언니"’가 되었다. "책언니"가 되고나서부터는 같은 단체 사람들 빼고는, 여덟 살 아홉 살 꼬마 애들이랑 제일 자주 만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만나는 사람들은 얘들 밖에 없다. 가끔 좀 허탈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만날 ‘우리 꼬맹이들 타령’ 하면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싫어했는데, 결국 또 이런 일을 하게 된 걸 보면 이게 내 팔자인가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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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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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는 일이 다 그러하듯이

나를 포함한 지아의 언니들은 지아를 같이 대화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지아의 얘기를 언니들이 배려심 있게 들어주는 거라 여겼다. 그래서 착하게 받아줄 맘이 안 들면 지아에게 ‘저리 가’라고 했다. 사실 어린 지아가 맥락 없이 떠드는 얘기 같은 건 당장 눈앞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일 보다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봐주지 않는 어른들 옆에서 아이들이 안고 사는 뿌리 깊은 외로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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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인권오름 제 414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07일 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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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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