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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등록 2003.07.17(목) 제468호


진화하는 ‘모노가미’


일부일처제의 신화를 벗어난 대안적 결혼제도… 다양한 짝짓기 방식은 행복을 안겨줄 건가

‘떼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림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떼사랑은 ‘일대일 사랑’을 거부하는 전 세계적 흐름을 한글식으로 풀어본 개념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같은 장소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성관계를 가지는, 그룹성교를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떼사랑은 독점적인 일대일 관계를 주축으로 형성된 현재의 연애와 결혼제도(‘모노가미’로 불리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3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어식 이름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모노가미(monogamy·일부일처제)나 폴리가미(polygamy·일부다처제) 모두 독점적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데 반해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독점적 사랑을 거부한다. 그래서 이같은 경향을 ‘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다소 학술적인 개념으로 정리하는 이들도 있다.

떼사랑 나누며 독점적 사랑 거부?

폴리아모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3명의 파트너들이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트라이어즈’(Triads), 한명을 중심으로 두명이 양옆에 붙어 있는 형태의 ‘비’(Vee), 3명의 파트너들이 서로서로 그물처럼 얽혀 있는 ‘트라이앵글’(Triangle), 3명 이상이 모여 집단을 이룬 뒤 섹스를 포함해 여러 가지 사랑을 나누는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는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 등이 그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같은 흐름을 공론화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개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인간관계를 꿈꾸는 이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현실에서 실험해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에 가해지는 각종 법적 부담과 사회적 압력을 주로 받는 이들이 이 흐름에 주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위계를 만들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막힘없는 의사소통을 추구한다. 개인이 원할 때 언제든 즉시 탈퇴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한다.

폴리아모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제도가 일부일처제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그것보다 더 우월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흐름에 동참한 적이 있는 김아무개(35)씨는 “정교한 것 같지만 허구에 불과한 일부일처제를 부여잡고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길을 가느니 평등한 인간관계 속에서 독점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것이 백번 낫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신화는 대안적 결혼관계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지만, 폴리아모리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이른 시일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인류와 지구생명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짝짓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익할지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교과서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라는 성생활이 유난히 자유로운 나라였다. 화랑들의 얘기를 다룬 <화랑세기>에 소상히 나타나 있는 신라의 성문화를 보면, 근친간에도 혼인을 했고 유부남·유부녀들끼리도 프리섹스를 즐겼다. 일부일처제를 강조하는 기독교적 윤리나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조선시대 유교적 윤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인 신라의 성문화를 들여다보노라면 “혼인 형태는 그 사회가 이룩한 발전단계에 상응해 나타난다”는 영국의 인류학자 존 퍼거슨 맥리넌의 말은 진리에 속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류학에서는 교과서로 통하는 <결혼의 기혼>에서 인류의 결혼형태는 남녀 성비 불균형에서 비롯한 모계혈통 우선의 일처다부제에서 일부다처제로, 다시 일부일처제로 변모해왔다고 주장했다.

일부일처제만을 채택한 나라 많지 않아

이보다 더 여러 단계의 혼인 형태를 거쳤다는 주장도 있다. 즉, 인간사회는 완전한 난혼(전혼)에서 출발해 집단혼,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등 15개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일부일처제에 도달했다는 견해다.

일부일처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자였던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사유재산과 일부일처제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면서 상속자를 보호하고 재산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일처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적에게서 전리품으로 여성을 약탈하는 행위가 소유권 혼인 형태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역사를 포함한 모든 생물의 역사에서 지배적인 짝짓기 방식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일부일처제 옹호론자들의 최대의 적이라고 할 만한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끊임없이 입증되고 있다. 해부학·생리학·행동학 역시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다.

인류학자 머독은 <사회구조>라는 고전에서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인간사회 238곳 가운데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결혼제도로 강요하는 사회는 43곳(18.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인류학자 포드와 심리학자 비치가 조사한 185곳의 인간사회 가운데 29곳(15.7%)의 사회만이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인류학자 미드 같은 이는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진화생물학의 발달은 특히 일부일처제의 입지를 줄여놓고 있다. 진화생물학계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1~2%만이 일부일처제로 종족을 보존하고 있다고 결론내린 상태다. 일부일처제의 생물학적 토대가 놀라울 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책인 <일부일처제의 신화>(데이비드 P. 버래쉬, 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에 따르면, 특히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의 경우 이전에는 일부일처제를 따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유전자 지문분석’과 같은 최첨단의 연구방식으로 재검증한 결과 이들 종들도 대부분은 혼외 성관계를 통해 2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진화 생물학계에서 이들 종을 ‘겉치레형 일부일처형’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사회에 비춰봐도 상당히 시사적이다.

혼외 성관계의 확산은 결혼제도 변화 예고

‘중복 짝짓기’(multiple mating) 가 자연상태에서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라고 해서 동물들의 짝짓기와 인간의 결혼제도를 기계적으로 대비한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다. 동물의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의 문제에 머무르지만, 인간의 일부일처제는 그것을 뛰어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급속도로 보편화하고 있는 한국의 혼외 성관계는 일부일처제의 질적 변화 가능성을 예고한다. 몇년 전 소설가 김원우씨는 장편소설 <모노가미의 새 얼굴>에서 이미 한국의 일부일처제가 ‘해로 타입’(같이 살다가 같이 죽는 부부), ‘파탄 타입’(사별하거나 이혼하는 부부), ‘중혼 타입’(겉으로는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면서도 연인을 부부관계 밖에서 찾는 부부)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류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는, 일부일처제가 바람직한 것일지는 몰라도 자연스러운(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일부일처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좋은 일부일처제 결혼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도서 및 논문 목록]

· 일부일처제의 신화(데이비드 P. 버래쉬·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 이한음 옮김, 해냄 펴냄) 
·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앤소니 기든스 지음, 배은경·황정미 옮김, 새물결 펴냄)
· 섹스의 역사(토머스 라커 지음, 이현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다(다이앤 보로니·베티 켈리 지음, 최해정 옮김, 제삼기획 펴냄)
· 외도, 결혼제도의 그림자인가(김예속 지음, 형성사 펴냄)
· 변주혜, ‘부부의 성연구: 외도를 중심으로’(성신여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2)
· 남은주, ‘남녀의 외도원인에 관한 연구: 가부장적 가치관과 경험분석을 중심으로’(대구효성가톨릭대 석사논문, 1998)
· 가족은 없다(다이애너 기틴스 지음, 안호용 등 옮김, 일신사 펴냄)
·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마르티나 렐린 지음, 이용숙 옮김, 마음산책 펴냄)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3/07/021003000200307170468011.html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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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tn.co.kr/_ln/0104_201502041431381618_001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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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렇다면 혼다는 왜 유럽에서 어코드를 철수했을까요? 일단 직접적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혼다 영국지사의 레온 브래넌은 "어코드의 재고를 소진하면 해당 세그먼트로 복귀하지는 않을것이다. 경쟁비용이 엄청나다"라고 말했습니다. 



중형차가 가장 인기가 많은 한국과 달리 유럽은 D-세그먼트(중형)보다 C-세그먼트(준중형) 이하의 세일즈 볼륨이 큽니다. 쏘나타-K5-말리부 정도 평가되는 국내 중형차 시장과 달리 유럽 D-세그먼트는 폭스바겐 파사트, 오펠 인시그니아, 포드 몬데오, 푸조 508은 물론 메르세데스 C 클래스, BMW 3 시리즈, 아우디 A4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으니 어코드가 발 붙일 곳이 없어 보이기는 하네요.


상황이 이러니 토요타는 캠리를 투입하지 못하고 혼다는 본전도 못뽑는 어코드를 철수할수 밖에 없습니다. 어코드는 지난해 유럽에서 판매량이 19% 급감한 3,453대 판매에 그쳤고 혼다는 지난해 보다 5% 감소한 133,268대 판매가 고작입니다. 



유럽 D-세그먼트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어 제조사들의 D-세그먼트 차량 개발을 늦추는 상황까지 온 유럽이니 어코드 같은 마이너가 받는 타격은 더욱 크긴 했을테니 혼다의 어코드 철수 결정이 이상할 것도 없기는 합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특정 모델을 투입하고 철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만 최근 경제 상황과 미래 예측을 감안하면 어코드의 유럽 철수가 가지는 상징성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세계는 심각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전세계 상위 1%가 전체 부의 50%차지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99%에 이를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이번 다보스 포럼의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이런 부의 편중은 자동차 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벤틀리, 롤스 로이스 같은 울트라 럭셔리 브랜드는 없어서 못파는 지경이 되었고 벤츠, BMW 같은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포르쉐나 재규어의 성장세는 무섭습니다. 즉.. 있는 사람들은 대형/고급/스포츠카 수요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없는 사람들(특히 젊은층)은 소형/경형차도 벅차고 일각에서는 '차도 집도 살 여력도 없고 그럴 의사도 없다'며 차와 집으로 대표되던 과거 전통적인 동산/부동산 개념 자체를 흔드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유럽에서 D-세그먼트 자체가 부진한 이유가 단순하게 양극화 때문만이 아니라 EU의 경기하강과 유로화 위기에 따른 EU 역내에 드리운 그림자가 더 큰 이유이기는 할겁니다. 하지만 단순한 경기침체라면 모든 차량의 판매가 부진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브랜드는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한데 반해 유독 중형차 섹터만 부진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는것 입니다. 혼다 어코드를 살만한 사람들이 줄었고 그나마도 어코드를 안사는 것이지요.


(후략)


http://route49.tistory.com/513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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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어린이 보듬었던 ‘이슬람의 친구’ 끝내 IS 칼에 …

[중앙일보] 입력 2015.02.02 01:01 / 수정 2015.02.02 08:58

18년간 분쟁 현장서 아이들 도와 
IS 일부 대원들도 “고토 살리자” 
이라크전 땐 말리는 아내와 이혼 
모친 “전쟁 없는 세상 꿈꾼 아들”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된 고토 겐지가 지난해 시리아 알레포에서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다. 알레포는 IS가 일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사진 인디펜던트 프레스]


고토의 모친 이시도 준코는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AP=뉴시스]


난민으로 몰린 어린이들의 아픔과 희망을 전 세계에 전하겠다며 현장을 고집했던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健二·47).

 그는 2010년 9월 자신의 트위터에 "눈을 감고 꾹 참는다. 화가 나면 고함 치는 것으로 끝. 증오는 사람의 일이 아니며 심판은 신의 영역.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은 아랍의 형제들이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처럼 그가 친구처럼 아끼던 이슬람 땅에서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는 주검이 됐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일 새벽 5시쯤 고토의 참수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지난달 24일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에 이어 고토마저 살해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번 IS의 일본인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고토의 죽음이 알려진 1일 아침 모친 이시도 준코(石堂順子·78)가 언론 앞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메시지는 강렬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다. 아들은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했다. 그 신념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또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건 원하지 않는다.”

 고토는 명문 사립 호세이(法政)대 재학 중 미국 컬럼비아대에 1년간 연수를 가는 등 일찍이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졸업 후 히타치(日立)그룹 자회사에 취직, 잠시 샐러리맨 생활을 했지만 저널리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대 중반 저널리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고토는 제작사 현장 경험을 거쳐 1996년 ‘인디펜던트 프레스’란 독립 제작사를 설립했다. 이후 소형 카메라를 든 채 중동·북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 등 험지를 뛰어다녔다. 분쟁 지역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소년병이 돼 전쟁터로 내몰린 아이들의 삶을 전하는 걸 숙명으로 여겼다. 유니세프 관련 일에도 발벗고 협력해 왔다고 한다. 이라크전쟁 현장에 가려는 고토를 말리는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라크전 취재 당시 대다수 서방 언론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이를 기뻐하는 시민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고토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현지인들의 묘를 찾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시민에게 다가갔다. 3년 전에는 시리아 내전의 현장을 둘러보다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고 한다. 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PC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만들자며 2000달러(약 220만원)를 기부하며 “내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슬람 세력은 고토를 ‘이슬람의 친구’로 여겼다. IS가 일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시리아 알레포에서도 현지 아이들과 교류했다. 시리아 정부, 반정부 그룹 양쪽으로부터 취재 허가를 얻을 수 있는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그가 거의 유일했다.

 지난해 10월 IS에 붙잡힌 유카와를 돕기 위해 그는 3년 전 재혼한 부인, 그리고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되는 둘째 딸을 뒤로하고 시리아로 향했다. 그가 IS에 억류된 사실이 공개된 후 이슬람 내에서도 “고토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인터넷에서 고토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I AM KENJI’ 운동에 이슬람권 시민까지 대대적으로 참여했다.

 고토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1일 곳곳에서 고토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우리들 마음은 고토의 가족과 함께한다”(미국 오바마 대통령), “야만스러운 살해 행위를 가장 강한 표현으로 비난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고토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http://joongang.joins.com/article/512/17071512.html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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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원자력발전소 관련 기밀이 담긴 이력서를 통해 미국에 이민을 시도한 한전기술 직원이 검찰에 적발됐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정진기)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한전기술 원자력본부 직원 A(43)씨를 불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 '고학력자 독립이민(NIW)' 제도를 통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국내 이주알선업체에 이력서를 보내면서 원자력발전소 구조해석 결과값 등 한전기술에서 기밀로 분류한 정보 10여건을 첨부해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후략)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1/05/0200000000AKR20150105117200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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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성공의 열쇠는 언어다] 몽골 출신 엄마 둔 인형·도은이네 가족의 새 희망가
  • 2011.12.08 17:26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해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다. 올해 1월 현재 결혼이민자는 21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자녀도 15만여명이나 된다.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는 그동안 결혼이민자 자녀를 ‘반쪽 한국인’으로 여겨 완벽한 한국인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사회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말과 우리 문화만을 가르쳤다. 이들이 갖고 있는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부모 출신국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다면 글로벌 인재로 자라나서 국제화 시대에 우리나라를 이끄는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다.

“호르당 버서드 헐러 이데레(어서 일어나 아침 먹어라)!”

“자, 에제(예 엄마).”

“다히아드 자항 온트발 볼로흐귀요(좀 더 자면 안 돼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요즘 인형(10·경기도 부천남초 3)이네 집 아침 풍경이다. 인형이 엄마 바트겔레 나차그도로즈(38·부천 심곡본동)씨는 몽골 사람이다. 예전에는 여느 엄마처럼 우리나라 말로만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말이 서툴렀던 바트겔레씨는 자장가와 동요를 컴퓨터로 들려줄 만큼 우리말만 고집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사람과 외모가 거의 같아 말을 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그런데 입을 열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엄마가 몽골말을 쓰면 혹시 아이들이 우리말을 서투르게 해 놀림이라도 받을까봐 걱정이 돼 몽골어를 일절 쓰지 않았던 것.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일어나라’ ‘공부해라’ 같은 간단한 문장은 영어로 했다. 몽골에 있을 때대학에서 몽골어와 영어를 가르쳤던 그는 아이들에게 영어 조기교육을 했던 것. 그런 그가 아이들에게 영어 대신 몽골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올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부터다.


그는 “아이들이 여름방학 때 몽골에 다녀온 뒤부터 몽골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면서 함박 웃었다. 요즘은 아이들을 위한 교재도 직접 만들어 본격적으로 몽골말을 가르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쉬운 말은 몽골말로 하고, 단어를 하루에 10개씩 외워 쓰게 하고 있다.

인형이 아빠 황해연(42)씨는 “아이들이 몽골말을 배우면서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고 뿌듯해 했다. 조기입학해 오빠 인형이와 학년이 같은 도은(9·부천남초 3)이의 꿈은 선생님. 도은이는 “선생님이 돼서 몽골에 가서는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치고, 우리나라에선 몽골말과 문화를 알리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도은이는 지난 여름방학 때 몽골에서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렸으며, 게르(몽골 전통가옥)도 구경했고, 수태차(몽골차)도 맛있게 마셨다고 자랑했다. 아직 도은이가 알고 있는 몽골말과 문화는 아주 적은 것이지만, 그런 도은이를 바라보는 바트겔레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2001년 서울에 오면서 교사의 길을 접었던 바트겔레씨. 딸이 가다가 만 엄마의 길을 이어주겠다니 기쁠 수밖에 없을 터.

박주영 선수를 좋아해 축구선수가 되겠다던 인형이도 “아빠 나라와 엄마 나라가 사이좋게 살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나서고 있다. 인형이는 “몽골은 칭기즈칸의 나라로 옛날에는 힘이 셌지만 지금은 어려워져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럼 외교관이 돼야 하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엄마가 말하자 인형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외골수인 도은이에 비해 인형이는 축구선수와 외교관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몽골말만큼은 열심히 배우고 있다. 바트겔레씨는 아이들이 몽골국가(國歌)도 곧잘 부른다고 자랑했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3, 4군데씩 보내는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바트겔레씨는 “주변에서 다 보내니까 좀 불안하긴 한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 엄마들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 같다는 그는 “지난여름 몽골에 갔을 때 뭐든 천천히 하는 몽골 생활이 답답하게 여겨졌던 걸 보면 한국사람 다 됐다”며 호호 웃었다. 지난달 중순에는 시어머니가 계신 충남 금산에 가서 300포기나 되는 김장도 했다. 처음에는 김치가 매워서 잘 못 먹었지만 지금은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입맛도 변했단다.

바트겔레씨는 남편 황씨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2000년 9월 처음 만났다. 태권도 5단인 황씨가 태권도 시범단 일원으로 그곳에 왔을 때 통역을 맡았다. 바트겔레씨는 황씨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해 호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황씨는 결혼 상대자를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고 ‘시부모 부양은 못 한다’고 못 박는 한국 여성들에 비해 바트겔레씨가 순수해서 끌렸다고 했다.

2002년 황씨와 결혼한 바트겔레씨는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을 때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혼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고 한국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까지 두 사람이 함께 작은 가게를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정리했다고 한다. 바트겔레씨는 요즘 작은 회사의 통·번역 일을 하고 있고, 황씨는 대부 상담을 하고 있다. 황씨는 “생활력이 강해 경제적인 도움도 크지만 아내 덕에 봉사활동을 하게 돼 삶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황씨는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 후원사업부 부장으로 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남편 칭찬에 얼굴이 발그레해진 바트겔레씨는 “퇴근한 뒤 몽골말을 가르쳐야 해 시간도 모자라고, 아무래도 엄마가 가르치다 보니 느슨해져 진도도 잘 안나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엄마 나라 말을 가르쳐주는 부천무지개주말학교가 집 근처에서 열리지만 몽골어반이 없다. 경기도 내 몇몇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엄마 나라 말을 가르치는 ‘언어영재교실’이 있지만 몽골어반은 개설돼 있지 않다. 바트겔레씨는 주변에 몽골에서 온 엄마들이 꽤 많은데 왜 몽골어를 가르치는 곳은 없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 했다.

그래서 황씨 부부는 여름방학 때마다 남매를 몽골 외가에 보내 몽골어를 익히게 할 생각이다. 아이들은겨울방학 때도 가겠다고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견디기 어렵기 때문. 이번 겨울방학 때 몽골에 갈 수 없다는 엄마 말에 잠시 실망했던 도은이는 “그동안 몽골어를 빨리 배워 외할머니와 외삼촌 외숙모 사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인형이는 “엄마 친척이 몽골에 많아 정말 좋다. 내년 여름방학 때는 축구공을 갖고 가서 사촌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바트켈레씨는 몽골은 대학 학비가 이곳보다 싸기 때문에 그곳에서 대학을 보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했다. 30년 후쯤 성 김 주한 미국대사처럼 양국을 잘 아는 빼어난 외교관이 돼 있는 인형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도은이도 엄마 나라와 아빠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는 교육전문가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른다.

부천=글 김혜림 선임기자 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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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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