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행위보다 ‘통념’이 더 큰 피해 남겨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연구 결과 발표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랑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놨다.”

“영혼의 살인마”

 

언론에서 성폭력 범죄를 보도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수사다. 이런 수사는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어딘가 영구히 훼손된 인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성폭력은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일까? 과연 성폭력 피해자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주변에 알려봐야 너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성폭력 피해자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피해’ 자체보다도, 피해를 바라보는 주변인과 사회의 왜곡된 ‘시선’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4월 2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성폭력 통념 비판과 피해 의미의 재구성>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한 2005-2006년 인터넷 상담 389건의 일지와, 30명의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 235명의 성폭력 피해자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4월 2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포럼. ©일다

 4월 2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이 주최한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포럼.  ©일다

전문 읽기 :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074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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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군사기지 건설 반대 ‘섬 전체 투쟁’ 불붙나

2014.09.23주간경향 1093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8월 말에 일주일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오키나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과 현장의 분위기를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간의 ‘온도차’가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각의에서 결정한 이후 17년간 쟁점이 되었던 후텐마 기지의 북부 헤노코로의 이전이 공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결정 당일 오키나와 현지의 양대 언론인 <류큐신보>와 <오키나와 타임스>는 이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류큐신보>는 각의에서의 해석 변경이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쿠데타적 발상이며, 이 사태는 결국 오키나와를 또 다른 전쟁위협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으로 만들 텐가”라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8월 14일 오키나와 나고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해상시위를 벌이다 일본 해안경비대에 제지당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해상보안청 보트가 카누시위대 압박
‘악마의 섬’이라는 표현은 수사적인 것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의 점령 이후 현재까지 오키나와는 사실상 미국의 군사식민지로서의 성격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전쟁에 오키나와의 군사기지가 사실상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걸프전과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전폭기가 발진한 곳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였다. 베트남전쟁 시기 오키나와는 ‘악마의 섬’으로 불렸다. 베트남인들은 오키나와에서 발진해 맹폭을 퍼붓는 폭격기를 저주하면서 동시에 오키나와도 저주했다. 중세 중국인들이 오키나와라는 발음과 유사한 음차표기를 사용해 악귀도(惡鬼島)라고 부른 적이 있었는데, 베트남인들이 전쟁 당시의 오키나와를 실제로 ‘악마의 섬’으로 불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인들은 자신들이 태평양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체험했기에 그 어떤 민족보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반전집회가 계속되었으며,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미군들을 보호해주고 망명시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인들은 미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희생되었다. 섬 주민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된 전쟁의 비극은 오키나와인들에게 ‘군대는 국민을 지키지 않는다’는 교훈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따라서 오키나와의 ‘반전평화주의’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노골화하고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향후 200년간 활용할 것이라며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노골적으로 강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에 오키나와 방위국은 해상기지 예정지인 오우라 만 매립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본 본도에서 용역들을 불러와 기지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고, 해상에서는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주민들의 카누시위를 압박, 연일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헤노코 신기지 반대행동은 나고 시민들의 현장투쟁에서 더 나아가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내가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8월 23일에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8·23 현민 대행동이 있었다. 나는 8월 22일과 23일 양일간에 걸쳐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부 앞 정문과 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지 반대행동을 취재할 수 있었는데, 주민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8월 22일 주민들의 감시선인 평화호를 타고 현민들의 해상 카누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오우라 만으로 나아갔다. 일본의 해상보안청 경비선들이 기지 건설구역을 표시하는 부표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고, 해상에는 대형 구축함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10여척 이상의 카누를 타고 기지 건설현장을 대응감시하고 있었는데, 해상보안청 소속 모터보트가 카누시위대에 바짝 붙어 공세적으로 압박하는 풍경을 자주 보았다.

오는 11월 지사선거에 최대 이슈로
그날 평화호에는 야마우치 쓰에코, 아라가키 세이료 오키나와 현의원, 지역 언론 취재기자,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인 마이클과 내가 동승했는데, 취재·조사를 목적으로 배에 타고 있는 우리에게 해상보안청 요원들이 강한 경고방송과 충돌위협을 거듭하면서 카메라로 우리들을 채증했다.

캠프 슈와부 정문에는 약 80명의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면 류큐대학과 오키나와대학을 포함한 오키나와의 대학생들이 다수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어린 중·고생들도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학을 맞아 그들은 기지 앞에서 상주하면서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에 청년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도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 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이 역으로 오키나와 특유의 ‘섬 전체 투쟁’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실제로 8월 23일 오후 1시 캠프 슈와부 정문 앞에서 진행된 ‘8·23 현민 대행동’에는 3600여명의 오키나와 현민들이 집회에 참여해 기지 건설에 항의했다. 캠프 슈와부가 위치해 있는 북부 나고시 헤노코로 이동하기에는 교통과 주차시절 모두가 빈약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본도 각 지역에서 30대의 임대버스를 타고 현민들이 운집한 셈인데, 헤노코 투쟁이 시작된 이후 이렇게 많은 주민들이 집회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고 집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오키나와 현민들의 ‘섬 전체 투쟁’이 다시 촉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은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에 있을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는 반기지운동 측에서건 아니면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일본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든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기지 건설 강행과 오키나와 현지사 선거가 맞물리면서 ‘기지건설 반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었다. 현재의 지사인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에 대항하여 같은 자민당 소속인 오나가 다케시 나하 시장이 지사 선거에 기지 반대파 단일후보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키나와현 주민의 81%가 기지 반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기에 나카이마 지사의 3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오키나와인들은 지지정당과 좌우이념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의한 소녀 성폭행 사태, 교과서에서의 집단자결 삭제 문제, 신기지 건설 문제 등 오키나와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섬 전체 투쟁’을 전개하는 항쟁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는 일본과 미국에 의한 이중식민지 체제가 초래한 폭력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오키나와식 평화주의와 함께 자립과 자치에 대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id=201409161343041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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