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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합격해 학교 찾아온 제자, 왜 슬프지

[아이들은 나의 스승 29] 20~30대 청춘 바쳐 끝내 법관이 된 제자

14.12.07 14:14l최종 업데이트 14.12.07 14:14l


▲  그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별명조차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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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드디어 사법고시 합격했어요."

늦은 저녁 시간, 수화기 너머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얼추 10년 만이다. 그동안 뭐하며 지냈는지는 들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와 이렇게 직접 통화를 한 건 그렇듯 오랜만이다. 통화하기 전부터 그의 합격 소식은 알고 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학교는 이미 부산을 떨고 있었고, 일찌감치 교문에는 '경축' 현수막이 내걸린 터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법관을 꿈꿨다. 다른 진로는 아예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법대 진학만을 목표로 공부했고, 적어도 그에게 대학 '간판'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담임이었던 것도 아닌데 그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래서다. 당시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간판'이지, 전공이나 적성, 흥미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초·중·고등학교의 적성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별명조차 '검사'였다. 고등학교가 법대로 진학하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그에게 대학이란 오직 법관이 되기 위한 코스이자, 거칠게 말해서 사법고시를 대비하는 학원일 뿐이었다. 

학급 임원조차 손사래 칠 만큼 오직 '한 우물'만...

고등학교 시절, 그는 묵묵히 공부만 했다. 무슨 일이든 빈틈없고 야무지게 해낼 수 있는 더없이 착실한 아이였지만, 실장은커녕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학급 임원조차 손사래 칠 만큼 오직 '한 우물'만 팠다. 다분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어, 응당 그 또래 친구들 앞에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법도 하건만, 마치 수도승처럼 도 닦듯 학교생활을 했다.

이내 그는 대학생이 되었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여느 아이들은 옛 추억이 그리워서 한두 번쯤 고등학교를 찾지만, 그는 졸업하자마자 '잠적'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의 대학생활을 수소문하거나 궁금해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모두 일찌감치 '신림동'에 터 잡았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따금 졸업한 또래들로부터 그의 소식을 전해 듣곤 했다. 해가 가도, 누구에게 들어도 똑같은 이야기였다. '신림동'에서 여전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는. 전하는 아이들이나, 듣는 나나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 소식을 매번 그저 시큰둥하게 나눴을 뿐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인 그는 십수 년 동안의 '청춘'을 사법고시 합격과 맞바꾼 셈이다.

"축하하기는 한다만…"

제자의 합격 소식에 함께 들떠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나도 모르게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순간 더없이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한없이 가여웠다. '고작' 법관 하나 되자고 20~30대의 피 끓는 청춘을 들어 바친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초중고 학창시절을 빼도, 사법고시 공부에 자기 인생의 절반을 할애한 셈이 된다.

바로 다음날 그는 직접 모교를 찾아왔다. 교문의 큼지막한 '경축' 현수막이 맨 먼저 그를 환영했다. 그간 못 찾아뵌 은사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지만, 기실 그를 향한 축하와 격려를 나누고 기뻐하는 자리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조차 그의 성에 '별명'을 붙여 불렀다. 

1, 2,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일일이 찾아뵌 후, 이윽고 내 '순서'가 왔다. 그의 모습을 단박에 알아봤다. 십 년도 훨씬 더 지났지만, 몸이 나고 얼굴에 주름이 약간 팬 것말고는 외모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했을 그의 오랜 고시 공부를 증명해주는 건 단지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뿐이었다. 반가움에 와락 끌어안았다. 

서로 마주 앉았지만, 그간 잘 계셨느냐,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는 말 외에 딱히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것도 그렇고, 갓 합격한 마당에 미래의 진로에 대해 말 꺼내는 것도 무척 생뚱맞은 일이다. 대개 졸업 앨범 꺼내보듯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가는 게 보통일 텐데, 그와 내겐 딱히 그럴 만한 꺼리가 없는 탓이다.

"그간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성공해서 당당히 찾아뵈려고 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슬펐다. 하긴 명문대가 아니면, 이렇듯 고시에 합격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한 게 아니라면 모교를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제자들이 재수나 삼수를 해야 더 얼굴을 보기 쉽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어쨌든 수능 철이면 입시 원서를 들고 학교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교문의 '경축' 현수막 보며 그도 다시금 깨달았을 것

연락하고 싶어도 스스로 움츠러들어 저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교문의 '경축' 현수막을 보며 그도 다시금 깨달았을 것이다. 무수한 졸업생 중에 모교는 성공한 이들만 기억해 준다는 사실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자는 취지의 그 현수막이 되레 장삼이사 다른 졸업생들이 모교를 찾는 데 장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성공'이라는 말이 불편했다. 과연 사법고시 합격만으로 성공이라고 단언할 수 있나. 굳이 성공을 말하려면,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법관'으로 기억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법관'이 아니라 '어떤'에 방점에 찍혀야 된다는 의미다. 헤어질 즈음 그의 손을 꼭 잡고, 부디 '좋은' 법관이 돼달라며 연신 부탁을 한 이유다.

내가 아는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틀림없이 올곧은 법조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벼슬'에 호들갑스러운 우리 사회와 학교를 보노라면 조금은 두렵다. 무엇보다 이삼십 대 '청춘'을 고스란히 희생한 대가라는 생각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검사로서 어떤 죄를 묻고, 판사로서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까.

그가 검정 법복을 입고 법정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앞에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피고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그의 외마디 선고에 피고인의 생사가 달렸다. 법조문에 명시된 대로, 그는 '양심'에 따라 판결할 것이다. 그러나 때론 '양심'도 오랜 시간 각인된 자신의 '경험'과 '편견'을 넘어서지 못한다. 바로 그 점이 두려운 것이다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얼마 전 까마득한 후배 교사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사범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 남 부러워할 만한 학점을 받았고, 수차례의 낙방을 거듭한 끝에 임용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최고'의 교사라며 내심 자처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는 최고는커녕 교사의 자질이 있는지 자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사범대의 커리큘럼과 임용시험이라는 제도가 제대로 된 교사를 선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시험 성적과 교사로서의 자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날도 그의 부모를 모셔다 놓고 가출한 한 아이와 상담을 했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돼 정말이지 죽을 만큼 힘들더란다. 나름 부유한 가정환경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범생이'였던 그다.


▲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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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시 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로또 대박을 꿈꾸듯 오매불망 고시 합격을 되뇌이며 '신림동'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오랜 세월 흘린 피와 땀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 신산했던 경험이 되레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방해하고 왜곡된 판단으로 이끌 가능성도 충분하다. 주지하다시피,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헤어진 직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다짜고짜 20~30대 '청춘'의 시간과 사법고시 합격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느닷없는 그 질문에 아이들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놀랍게도 대부분 후자를 택했다. 다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표정이었고, 개중에는 '법관이 된다면야 그깟 10~20년이 문제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청춘'이란 그다지 가슴을 뛰게 하는 말이 아닌 듯 싶었다. 하긴 얼마 전 '청년'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질문에, 열이면 열 '백수'와 '실업'이라고 답했던 아이들이다. 말하자면,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렜던 '청춘'의 가치는 법관 자리 하나보다 못한 셈이다. 적어도 이 땅의 아이들에게는. 부디 법관이 된 그의 건투를 빈다.



Posted by 정규화
:

첫번째 언니, 피죤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했어요"

언니, 섹스할래? 2013/06/26 21:38 이프

섹스 인터뷰 할 '언니'를 찾는다는 공지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리지마자 30분도 지나지 않아 메일이 왔다. 이렇게 빨리 입질이 오다니, 이번 프로젝트는 왠지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십대, 레즈비언, 부치라 소개했다. (부치, 팸에 대한 정의는 굳이 하지 않겠다. 내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에는 여러가지 의미들이 뒤섞인 단어라서 차라리 불친절함을 택하기로 했다.) 




첫번째로 내게 인터뷰 신청을 해준 그녀를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빙자해 언니들의 섹스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아, 난 참 복받은 년이구나. 




홍대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이십분이나 늦게 도착했고 그녀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홍대역에서부터 열심히 뛰어왔더니 숨이 찼다.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의 섹스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했어요. 처음에는 안마기로 했어요.“ 




이게 재미있었던거예요. 너무. 어, 되게 재미있네. 그 생각을 하다가 만져도 보고, 그러다보니까 이게 되게 재미있는 거예요. 이것도 재미있는데 둘이 같이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랬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는 샤워기로도 하고, 나중에 되니까 손으로 하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같이 섹스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도 혼자서 했어요. 지금 만나는 애인이 처음에 저한테 했을 때 그러더라고요. 너 왜 이렇게 자연스럽냐고. 다른 부치들한테 넣으면 아파하고 잘 안됐대요. 제가 상대가 만지는 걸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좋은 지 아는 건 제가 많이 만져봐서 인거 같기도 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키스도 하고 섹스 비슷한 애무? 그런 것도 했어요. 부모님 안 계실 때 저희집에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 친구랑 계속 만나고 있는 와중에 다른 친구가 저한테 키스를 했어요. 이게 뭘까.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안했는데, 고등학교 내내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아, 나 레즈비언이구나“ 





스무살이 딱 되고 나서 내가 지나온 게 뭘까, 남자에 대해서는 진짜 관심없고. 나는 뭐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 나 레즈비언이구나 하고 인정했어요. 오히려 인정하기까지는 생각이 없었는데 하고 나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건 뭐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무살이 됐는데, 섹스는 어떻게 해야되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한게 섹스인가? 섹스는 어떻게 한거지? 고등학교 때 했다고 해봤자 트리바디즘? 이 정도? 삽입도 잘 몰랐고.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랑 어쩌다 쭉 만나게 됐어요. 그 친구한테 너랑 나 아무래도 레즈비언 관계인 것 같다고 하니까 그래? 난 너보면 그냥 좋아. 만나자. 그래서 그때부터 사귀는 관계가 된거예요. 그때부터 그 친구랑 섹스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됐죠. 

처음에는 뭘 모르니까 그냥 딜도를 샀어요. 그러다가 썼는데, 그 친구가 어디서 뭘 보고 왔나봐요. 손가락을 써보래요. 그게 제 생애 첫 레즈비언 섹스인거죠. 그날이. 그날 둘이 되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딜도를 썼을 때보다. 제 감정적인 것도 그렇고. 오! 신세계다. 그게 스무살 겨울이었어요. 시작이 된거죠. 무궁무진한 세계가. 나중엔 딜도를 썼어요. 마무리는 손으로 했던 거 같은데. 





"부치, 팸 어떻게 나눠요?“ 





그 친구랑 고등학교 때부터 6년 넘게 잘 지내다가 그 와중에 어떤 사람을 하나 알게 됐어요. 클럽에 갔다가, 이분이 삼십대였는데 자기집에 가자고 해서 갔어요. 나는 애인이 있다고 말했더니 애인있어도 해도 된다. 나도 너랑 사귈 마음 없다. 그냥 한번 자자고. 저는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원나잇이 생소하니까. 하고는 싶지만 그 친구 얼굴이 생각이 나고. 그래서 못하겠다.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그렇게 안봤는데. 이러는 거예요. 그때 알았죠. 나 같은 스타일을 왕부치, 개부치. 그냥 나 같은 스타일을 원나잇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나? 어, 내 이미지가 뭐지? 그럼 저같이 하고 다니는 애들이 원나잇 많이 해요? 하고 물어봤더니 그 언니가 내가 원나잇했던 애들은 다 너같이 생긴 애들이었어. 이러는 거예요. 자기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해서 원나잇을 한거면서 쟤네들은 다 원나잇하네. 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냥 아침에 밥 먹고 나왔어요. 아무 일 없이. 그러고나서 집중적으로 저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나는 뭘까. 내 안에 여성성은 가지고 있고 겉모습만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고 다니다보니 이렇게 된거지. 

그때는 어떻게 나를 함부로 규정해라고 생각했어요. 지내다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안에서 내가 포지션을 어떻게 잡아야되나. 




레즈비언 섹스에서 생각하게 되는 게 부치, 팸 같은데 부치, 팸 어떻게 나눠요? 섹스로 나뉜다. 그럼 난 뭐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난 그럼 전천? 그럼 네가 무슨 전천이야, 부치지. 번개 같은데에 나갔을 때 저는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저는 원래 사람들을 잘 챙겼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매너부치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아니라 부치가 되는 거죠. 제가. 그런데 부치라고 해서 다 같지 않잖아요. 레즈비언 사이에서 부치, 팸에 대해 너무 뿌리깊게 뭔가가 있는 거 같아서 근간이 있는 거 같아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흔들고 싶지 않아하는 불편한 것들 있잖아요. 사실 퀴어도 그렇고 동성애도 그렇고 가부장제도 그렇고. 레즈비언 사회에서 부치, 팸이 그런거 같아요. 그럼 난 그걸 흔드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던 친구(A)랑 서로 마음이 떠나서 헤어지고, 그때부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알게 됐던 다른 친구(B)를 만나게 됐어요. 운이 좋아서 두 친구 다 섹스가 잘 맞았어요. B랑 2년정도 만나고 헤어진 다음에 다시 A를 만나게 됐어요. 




A를 다시 만나기전에 잠깐 공백기가 있었는데 친구가 소개시켜준 어떤 언니를 만났어요. 그 언니랑 만나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갔어요. 저도 에이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언니가 SM성향이 있었어요. 처음 만나서 노멀한 느낌의 섹스를 하는 와중에 그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때려줬으면 좋겠다. 때렸는데 더 세게 때리래요. 못 때리겠는데요. 미안한데 못 때리겠다. 그럼 자기가 때려보겠대요. 제 엉덩이를 때리셨는데 정말 아픈 거예요. 미안한데 정말 아프다고 했더니 이렇게 달아오르게 해놓고 원하는대로 안해주면 어떡하냐. 알겠다고. 때리겠다고. 저는 때렸는데 그 언니한테는 감도 안왔던 거예요. 그렇게 한번의 섹스가 미적지근하게 끝나고 지금은 잘 지내요. 친한 언니 동생으로. 그 뒤에 A를 다시 만나고 일년 뒤에 헤어졌죠. 

                                                  ▲그녀가 인터뷰 내내 열심히 끄적인 흔적 





"우리 사귀는 거예요?“ 





그리고 작년 4월에 지금 애인을 만나게 됐어요. 첫눈에 우와 진짜 예쁘다. 제가 첫눈에 반하는 게 있어요. A도 그렇고 B도 그렇고 지금 애인도 그렇고. 다른 언니가 그 언니는 여자가 너무 많아서 안된대요. 마음고생한대요. 아니다. 괜찮다 했더니 계속 안된다고 하다가 번호를 알려줬어요. 안된다는 이유는 그거였어요. 여자가 너무 많다. 누군가를 지금까지 진지하게 만나본 적이 없다. 원나잇 잘한다. 그런데 저는 그게 상관이 없어요. 제가 좋아하면 다른 게 안보이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언니랑 나랑 연애 패턴이 다른거잖아요. 지금 섹스를 하고 원나잇을 하고 그냥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너무 예쁜데. 그래서 처음 섹스할 때 하다가 도중에 바보같이 우리 사귀는 거예요? 하고 무릎꿇고 물어봤어요. 저 언니 진짜 좋아하거든요. 지금 원나잇하면 나중에 안보는 거잖아요. 그랬더니 언니가 빵터졌어요. 저는 당시에 진짜 심각했거든요. 내 인생에 세번째로 예쁘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언니가 우선하자고 그래서 했어요. 다음날 아침에 집에 언니를 보내고 그뒤로 연락을 계속 주고 받았어요. 확실히 언니는 깊은 관계는 유지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저랑 사귀고 싶지는 않대요. 애인관계는 하고 싶지 않다. 규정하고 싶지 않다. 자기는 끌리면 하고 아니면 아니고. 그냥 마음대로 선택하고 싶대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새로운 시도잖아요. 오케이. 그렇게 지내요. 내가 좋아하니까.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면서 만날 때마다 섹스를 했어요. 처음 섹스했을 때 언니가 사정을 했어요. 애인은 사정을 항상 했으면 좋겠대요. 자기한테 있어서 가장 큰 쾌락이고 사정할 때까지 가야만 한대요. 저는 섹스할 때 그 사람 몸에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약간의 수축도 놓치면 안되잖아요. 그때 언니가 얘는 키워도 되겠다 싶었대요. 그 뒤로는 저한테 원하는 걸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는 바로바로 적용시키려고 하고. 




레즈비언 사회에서 섹스에 대해 도덕적으로 구속하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사회가 여자에 대해 구속하고 있는 점들. 같은 지점인 거 같아요. 사회에서도 여자가 섹스 많이 하면 뭐라고 하는데 레즈비언 사회에서도 뭐라고 하면. 뭐하는 건가 싶어요. 섹스를 많이 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관계에 대해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게 좀 그래요. 처음 언니를 알게 해준 언니는 우리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대요. 삼개월 만나고 말겠지. 그런데 벌써 일년이 지났고 서로 너무 안정감을 느끼고 있잖아요. 너 어떻게 감당하냐. 너 성격이 너무 좋아서 그래. 그런데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이 사람이 잘 맞고 둘이 생각하고 고마워할 줄 알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관계가 지속되는 거지 누가 누구를 감당하는 건 아니거든요. 기준도 이상하잖아요.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섹스를 했기 때문에 감당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웃겨요. 섹스를 많이 했다고 문란하다고 하는 것도 웃기고 문란한게 그럼 나빠? 그것도 아닌데. 





"언젠가 언니와의 섹스도 지루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언니가 큰수술을 했는데 그뒤로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섹스가 뜸하게 됐어요. 섹스를 쭉 해오다가 오래 쉰적이 처음이었는데 두달쯤 안했는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억지로 하거나 다른 사람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다시 섹스를 하게 됐죠. 그런데 예전에 하던 만큼이 아니니까 충족되지 않는 게 있더라고요. 한달 전 쯤에 삼년 전쯤 알게 됐던 사람을 학교 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됐어요.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섹스 할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나랑 하자는 얘기냐니까 너랑 하면 좋겠대요. 그 친구랑 해보고 싶긴 한 거예요. 그래서 했어요.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섹스만 생각하고 누군가를 만난게. 얘랑 섹스해야지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던게. 그렇게 했는데 그 친구는 너무 좋았대요. 그런데 저는 너무 별로인거예요. 그 다음날 그 친구랑 이야기 하는데 이렇게 지내는 거 좋지 않겠냐. 섹스 파트너는 아니어도 섹스 프렌드 정도는 되지 않겠냐.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냥 프렌드만 하자. 정말 미안한데 나는 별로였다. 그런데 그땐 정말 그 생각밖에 없었는지 그 친구 지금 애인이랑도 잘 놀고 그래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 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면 약간 잔상도 남는 거 있고 회상해보기도 하고 다음엔 그렇게 해볼까 상상도 하고. 그런 여운이 남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여운이 남는데 이 친구랑은 아무 것도 안 남더라고요. 할 때는 몰라도 할 때는 집중하고 해도 끝나고 나서 너무 다르더라고요. 이 사실을 지금 애인한테 이야기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하지말자고 결론 내렸죠. 




언젠가는 언니와의 섹스도 지루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A도 B도 그렇게 헤어졌던 것 처럼. A와 다시 만나고 어느 날 여행에 가서 섹스를 했는데 마지막 섹스란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건 정말 잊기가 어려워요. 몸에 집중을 하고 있긴 한데 내가 만지고 있긴 한데 만지는 건지. 공중에 떠서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만지고는 있는데 내 몸은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 정말 슬프더라고요. 내 몸은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은 저기 있는 건가. 마음이 떠난 섹스란 이런건가. 그렇게 그날 A와 헤어지고 나중에 만나게 됐는데 그날 그 친구도 이런 생각을 했었대요.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었던거예요. 그 때 그 느낌이 어느날은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과도 들지 않을까 슬프기도 하면서 모르겠어요.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 애인과 행복하게 가보자고 결론 내리겠지만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섹스를 한 여자는 총 다섯명인데 이런 적이 한번 있어요. 게이클럽에 놀러갔다가 게이랑 섹스한 적이 있었어요. 자기는 부치식이라고 너같은 애랑 자보는 게 꿈이라고. 어떻게 할까 그랬더니 제가 딜도를 차고 해달래요. 저한테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재미있었어요. 자기 소원 풀었다고 재미있었다고 그리고 다시 친구로 잘 지내요. 그 친구가 또 심심할 때 하자고 했지만 저는 안한다고 했어요. 힘들어 싫어. 이랬죠.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만난 부치 중에 그나마 네가 힘이 세보여서 신청을 했던건데. 들긴 들려지지만 느낌이 별로였어요. 재미는 있었는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지금 애인과의 섹스는 섹스 이상의 뭔가가 있어요.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전에 만났던 사람들도 너무 사랑했는데 지금 애인한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봤거든요. 섹스를 하다가 사랑한다고 했는데 언니도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날이 정말 달랐어요.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았네. 벅찬 느낌. 헉 뭔가 마음이 가득해지는.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이 생각까지 했어요. 진짜 그 순간에 너무 좋아서.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내가 이거 한번 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거 아니야? 그 때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예쁜데 나랑 섹스하는데 나를 사랑한대. 대박인데? 쓰리콤본데? 이러면서 벅찬게 있었죠. 언니가 요즘 너무 행복하대요. 자긴 안정감을 느낀다고. 자기 인생에 이런적이 없었던 거 같대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어떤 고백보다 좋았어요. 

                                           ▲그녀는 내게 인터뷰 내내 끄적인 종이를 선물로 주었다. 



"언젠가는 하게되겠죠. 쓰리썸도.“ 




누구와의 섹스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지금 만난 애인과의 섹스가 가장 좋아요. 지금 이 관계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건 섹스 같아요. 저는 연애할 때 다정하거든요. 언니는 절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대요. 장난도 치고. 그런데 섹스할 때는 제가 더 리드하거든요. 제가 섹스할 때조차 언니한테 끌려가면 좀 그럴 거 같거든요. 지금 애인 만나기 전에는 잘 모르고 서로 알아가야되고 답답한 상황들이 있었거든요. 지금 애인과는 자유로워요. 자기 몸을 이미 잘 아니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주니까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고. 거기서 균형이 맞는 거 같아요. 

도구를 쓴다거나 그래본 적은 없는데 여러가지 자세를 시도해보고 대화를 솔직하게 하고 거기서 다른 사람들과의 섹스와 다르다고 느끼는 거 같아요. 언니가 저보다 경험이 훨씬 많고. 언니는 저한테 키우는 맛이 나서 재미있대요. 




저희는 거의 집에서 하거든요. 모텔은 안가고. 한번은 언니가 교정 중이어서 치과를 같이 갔다가 끝날 때 데리러 간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하고 싶대요. 그러더니 정말 제 목덜미를 잡고 화장실에 끌고 가더라고요. 그때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아, 제주도 여행을 만난지 삼개월 만에 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담요 덮고 한적도 있었어요.. 장소를 떠나서 급작스럽게 했을 때도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애인 전에 만났던 사람들하고는 자세부터 거의 노멀하게 섹스했죠. 술을 마시면 서로 거칠어지기도 했는데 맨정신에는 항상 부끄러워해서. 




지금은 쓰리썸이 섹스판타지예요. 누군가와 섹스를 하기 전에는 그게 판타지였고, 뒤로 해보기 전에는 그게 판타지였고, 언젠가는 하게 되겠죠. 쓰리썸도. 예전에 제의를 받은 적은 있었는데 그 때는 하기가 싫었어요. 별로 안 끌렸나봐요. 언젠가는 하게 될 것 같아요. 언젠가는. 




-은하선 

기사(원문) 출처 : http://blog.ohmynews.com/feminif/503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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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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