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당원인 친구의 소개로 함께 왔습니다.

덕분에 밥도 맛있게 잘 챙겨 먹었습니다.

밥값은 '자율 기부'로 걷었는데요, 꽤 모인 것 같았습니다.


진행도 원만했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고, 공연도 좋았습니다.

몇몇 반가운 분들도 만났습니다. 

녹색당 광주시당 창당준비위원회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겠습니다.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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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화곡동. (2,5호선)까치산역.

거긴 우리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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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집은 이제 새건물로 바뀌었다.

우리 집은 주인이 재건축을 목표로 주변 집들을 사모으는 와중에

재건축 전까지 자금이나 쓸 요량으로 반전세로 임대해 준 곳이었다.

나는 보증금 1500만원에 월5만원을 내고 이곳에서 2년 남짓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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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갔을 때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12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고 씌여있었다.

없어져버린, 이젠 '새 집'이 되어버린 곳.

'우리집'

문득 돌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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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도림을 지날 때 이따금씩 추억에 젖는다.

보통은 인파 속에서 부딪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 힘쓰고,

조금쯤 여유가 있다 싶으면 '사람 구경'을 한다.

그래도 가끔은 추억에 젖는다.

내가 살았던 곳, 까치산. 그때도 지금 못지 않게 신도림역을 자주 이용했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던 길. 까치산행 지선 전철의 출발역(시발역), 신도림역.

그 시절 신도림역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홍대 가는 관문' 쯤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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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산은 내 유년기 추억이 깃든 동네다.

주소는 화곡동인데, 근처에 '까치산'과 '까치산역'이 있었으므로

우린 이곳을 '까치산'이라 불렀다.

동네를 칭할때도, 사는 집을 칭할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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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언제나처럼, 지선으로 갈아타고 우리 집이 있는 까치산으로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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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내가 태어날 당시 내 부모란 이들이 살았던 경북 포항시는 내 고향이 아니다.

내 고향은, 내가 살았던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900-43번지 지층 우측, B0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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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제 '태어난' 곳은 경북이 아니고 서울 강북의 한 병원인데,

당시 포항에 살던 그/녀가 나를 낳고 '친정집'에서 산후 조리를 하기 위해 출산일 바로 전일에 서울에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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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한 달여를 서울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고, 다시 포항으로 내려갔으리라.

그리고 그곳 동사무소에 '출생신고'. 그렇게 나는 경북 포항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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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포항 다음 살았던 곳은 안양 관악역 근처의 별장빌라는 곳이었다.

5살까지 살았으니 별다른 추억이랄 것도 없고. 단편적인 기억들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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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 505동 1203호. 수도권 신도시치곤 꽤 전원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고(특히 5단지가, 그중에서도 우리 동이 좀 그랬다. 내가 기억하고 듣기로는 내 한쪽 친권자가 그런 취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집 바로 뒤엔 산과 공원도 있었다.

그곳에서 그저 그런 유치원-초등학생 생활을 했고,

광명시민회관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다.

역은 가깝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나마 가까운 역은 철산역.

헌데 그쪽 7호선 개통된게 2000년 2월이고, 마침 또 내가 2000년 2월에 그곳을 떠났으니 지하철과는 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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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730동 107호. 2000년~2006년.

특이한 점이라면 집이 1층이었고 '마당'이 있었다는거.

종종 거기에다가 채소도 길러 먹고 그랬다.

다만 재수가 없었던지 우리 전 주인은 마당에 돌을 깔아 놨었다는 거.

그 돌을 다 걷어내는 것도 일이었거니와

오랜 시간 돌들에 눌려 있던 땅이 채소를 재배할 만한 지력을 회복하기가 참 어려웠다.

거 취향 참. 굳이 돈들여가며 마당에 커다란 돌멩이들을 깔아 놓을 건 또 뭐였담.

결국 우린 '개간'을 해야 했고, 기술과 여력 부족으로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텃밭 농사는 지어보지 못했다.

마당에 있던 감나무엔 매년 감이 열렸는데, 꽤 많이 열렸고 맛도 좋았던 것 같다.

쓰다보니 좀 그립네.

목련도 있었는데, 너그럽게 본다면 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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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이 아파트 마당이란 게 그냥 실험적인 시도 정도로 끝났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면 또 어땠을까.. 싶기도.

'마당 있는 집'에 프리미엄이 막 몇 천 만원씩 붙고.. ㅋㅋ

아마 안 되겠지. 밭을 가꾸는 여유를 부리기에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바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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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치곤 공원도 많고 녹지가 잘 조성된 편이었던, 그나마도 지은 지 20년 가까이 되어서 심어놓은 나무들도 크고 울창한 느낌이 나던.

그런 곳에 살았다. 가까운 역은 목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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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중학생때 열렬히 좋아했던 그/녀도 같은 단지에 살았다.

그는 나와 같은 학교, 같은 학원을 다녔는데 아쉽게도 중2때 이후로는 자주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에 '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갈 참이던 그와 딱 마주쳤다.

그자리에선 급반가움을 애써 감추며 평범하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왠지 내 마음을 엄마한테 다 들켜버린 것만 같아 얼굴이 어찌나 화끈거렸던지.

그날 나는 엄마에게 "예쁜 애들은 자기가 예쁜 줄을 알죠?"하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내 속마음을 다 알고있다는 듯이, 웃었다.

풋풋했던 내 첫사랑의 기억.

근데 내 눈에만 예쁜 게 아니었던지 그는 인기도 무척 좋았고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상대'라는 티가 팍팍 났달까.

한때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다는 걸 후회하곤 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지 싶음.

허물없는 사이이긴 했는데. 물론 나를 좋아하진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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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엔 딱히 소개할 만한 것도, 굳이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으니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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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살았던 곳은 오목교역 근처 한동짜리 상가건물아파트였는데,

목동아파트보다 새 집이기도 하고, 36평형정도? 되는 집이었다.

거기서 또 한 3년 살았다.

이것도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돌이켜보면 상당히 괜찮은 집이긴 했던 것 같다.

(아파트만 살 땐 몰랐는데 싼 방을 찾고 거기서 겨울을 나고 하다보니... 정말 ㅎㄷㄷ)

그러다 2009년, 난 비로소 진짜 '내 집'을 구하고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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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게 된 곳은 까치산역 근처, 강서구 화곡동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 집.

나는 가능한 서울 강서-양천지역에 살고 싶어했기에 가능한 근방에서 집을 구하려 했었고, 그중 싼 축에 드는 곳이 이곳이었다.

내가 집을 구한 까치산역은 목동역에서 2역, 오목교역에서 3역거리다.

홍대도 가깝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지금처럼 누리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유소년기를 보냈던 이곳을 멀리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살기 좋은 동네였고, 도심에서 가깝고, 서울지하철 5호선이 있으며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도 편리했던 곳.

친구들, 그리도 당시 활동하던 협종조합 조합원들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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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09년 11월 24일.

내가 모은 돈으로 발품 팔아가며 고른, 내가 직접 계약한.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잔금을 치루고 '화곡1동주민자치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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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가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을 산 시기가 아닐까.

내 고향은 까치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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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966900

고향2 (故鄕)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 나는 어젯밤과 오늘 새벽에 걸쳐 3.의 뜻으로 내 고향, 화곡동을 생각했다.

비록 그곳에 살았던 건 2년이 채 안되는 기간이지만 다사다난했고, 내겐 이전까지의 20년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던 시기다.

문득, 그리워졌다. 추억이. 힘든 일도 많았지만, 삶 속에서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그 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트위터인(한 명은 텀블러를 겸함.)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곱씹어보았다.

놀랍게도. 조금씩 뭔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따 만날 샛별과도 이야기 해봐야지.

부디 오해만은 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는 때론 내게 버거운 상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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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 사는 요즘은, 신도림역을 1호선과 2호선 본선 환승에만 이용한다.

내가 서울 방면으로 가는 경우 8할은 이 역에서 환승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몇가지 이유로 서울에선 홍대/신촌지역을 선호하고, 자주 이용한다.)

작년엔가 한창 화장실 공사를 할 적엔 정말이지 불편했는데,

어느새 삐까번쩍한 새 화장실로 바뀌었고, 세면대에선 따뜻한 물까지 나온다.

요샌 증축 공사란 걸 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내가 즐겨 타는 동인천<->용산 급행 열차가 서는 플랫폼이 공사를 하느라고 위치도 바뀌고 멀리 돌아가야 하지만, 신축 역사가 들어서기까지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기사를 보니 2014년 9월에야 완공된다고 하는데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엘리베이터' 등이 생기는구나.


참고링크 :

http://zxc4470185.blog.me/30160083534

[2월 18일] 승강장 공사로 역사구조가 복잡해진 신도림역

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81227

신도림역, 16일부터 임시승강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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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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