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서향만당 21]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03.04.21 15:12l최종 업데이트 03.04.30 14:20l



홍세화 |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파리 생활을 시작했던 홍세화. 남민전 사건으로 뜻하지 않은 타국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다 근 20년만에 귀국,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다시 서울땅을 밟은 지 23년, 그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000년 겨울 서울 신림동 어느 카페에서였다. 영구 귀국을 앞두고 잠시 귀국했을 때 있었던 강연회였는데, 그는 ‘사회귀족’이라는 새로운 말을 써가며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가 말하는 사회귀족의 의미가 그리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새로운 개념이었던데다가 그걸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에.

그로부터 2년 4개월이 흐른 지금, 카페 ‘미네르바의 부엉이’에서 간략하게나마 언급했던 ‘사회귀족’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에 대한 설명과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보는 책을 접했다. 전작들처럼 한겨레신문사를 통해 나온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 그것.

신문 칼럼이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등 그의 글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우리 현실을 프랑스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 점이 홍세화의 글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일텐데,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그 대안을 찾을 때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 등을 비교 대상으로 꼽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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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단순히 비교 대상만 프랑스로 바뀐 것은 아니다. 홍세화는 석박사 학위를 따러 유학 간 것도 아니요, 뭐 거창한 사업한답시고 유럽까지 간 것이 아니다.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발령으로 프랑스 땅을 밟았다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입국할 수 없어, 결국 원치 않은(?) 이국 생활을 했던 것이다. 

마땅한 능력도 없고 프랑스어조차 능숙치 않았던 그였기에 결국 운전면허증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던 나머지 택시운전을 하며 빠리 시내를 누볐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한국에서는 소위 ‘KS마크(경기고+서울대)’를 따면 출세가 보장된다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는 그저 ‘또 한 명의 외국인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귀족, 그 ‘찬란한’ 이름이여 !

이 책이 나온 것은 지난 2002년 12월 말. 이미 넉달이나 지났다. “언제 한번 봐야지” 하면서도 짬을 내지 못하던 차에 책을 구입, 하룻밤 새 모두 읽어 버렸다. 짬이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데는 하룻밤으로 충분했지만 그의 생각을 곱씹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몇 곱절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 이 책에서 홍세화는 호남 차별이나 노동자 연대, 국가주의 교육 등 그야말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제 문제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진은 홍세화의 비판 대상 중 하나인 <조선일보>.
ⓒ 조선일보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전작들처럼 <조선일보>나 호남 차별, 노동자 연대, 국가주의 교육 등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제문제를 포괄하는 책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스펙트럼이 넓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듯도 하다. 그러나 찬찬히 책을 읽다보면 근저에 한국판 귀족 ‘사회귀족’의 온갖 추악한 폐습과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우리네 ‘사회성 없음’을 질타하고 있는 듯 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홍세화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부르디외가 말한 ‘국가귀족’이 있는 반면 한국에는 ‘사회귀족’이 있는데,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즉 프랑스의 국가귀족은 국립행정학교(ENA) 출신들로 주로 정관계와 국영기업체의 장(長)을 일컫는 반면, 한국의 사회귀족은 말 그대로 정관계나 재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계, 문화예술계, 문단, 종교계 등 (홍세화에 의하면 뭘 지도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불리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범위도 범위지만 프랑스 국가귀족의 경우에는 주로 공공기관에 한정되어 있어 언론이나 학계로부터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고 통칭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불리는 사회적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반면, 한국판 귀족은 그저 자기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부의 사회환원이나 부정부패 등에 대해 올곧은 소리를 내는 등의 ‘사회적 책무’는 그네들 사전에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귀족이란 신분이 종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습되는 경향마저 보인다는 데 대해 홍세화는 다시금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그저 힘없이 절망만 하지는 않는다. 사회귀족의 든든한 성채를 깨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교육을 통한 계몽이 필요하지만, 중단기적 방안으로서 풍자.고발 문화의 대중화와 실명 비판 강화, 그리고 일생 생활에서 ‘왜?’라는 물음을 갖자고 제안하고 있다. 



▲ 홍세화 /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한겨레신문사 / 2002 / 9,000원
ⓒ 한겨레신문사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안은 이미 각종 인터넷 매체나 일부 대학 교수 등에 의해 부족하나마 토대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지만, 마지막 방안으로서의 “왜?”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네 부모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왜”라는 물음을 없애려 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가나다’도 떼지 못한 코흘리개에게 ‘ABC’를 외우게 하는 데 바쁘고, 하늘은 왜 파란지 함께 궁금해 하기보다는 “하늘은 원래부터 파래서 그럴거야!” 혹은 “그런 건 알아서 뭣해!”하는 핀잔이 먼저 나온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제기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어도 “빨리 학원이나 가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하더라도 절망하진 말자. 우리 역사는 느리지만 그래도 도도히 흘러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해방 이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나긴 군사정권기를 이겨냈고, 해방 반 세기만에 (김대중 정권의 공과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정권교체라는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도 맞이했다. 

이전에는 말도 꺼내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인권이라는 가치가 요즈음에는 심심치 않게 장삼이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또 ‘조중동 카르텔’에 대항하는 각종 매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 역시 적지 않은 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로 통했던 “Why Not?” 혹은 “Why?"라는 질문이 서서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홍세화, 그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단다. 그는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단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군인이라 하더라도 ‘나홀로 척탄병’ 역할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무기로 그 대열에 동참할 자원병, 누구인가.

Posted by 정규화
:

남자친구 연락에 의지하는 나.


 (판) 2014.11.13 21:55


남자친구는 저보다 4살 연상입니다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해결점이 뭔가 싶기도 하여 톡에 써봅니다..

 

 

남자친구랑 사귄지는 4개월차 접어드는데  연애 초기에는 서로 무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뭐만하면 연락 붙들고 서로 연락을  계속 하며 주구장창 폰 붙잡고

 

살았죠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입니다 차타고 3시간거리..)

 

장거리여서 주말마다 만날 수 있기때문에 더 연락에 서로 잘하면서 지내왔는데..

 

제가 연애할 때마다 느낀점이.. 남자친구와 지낼수록 제가 남자친구 연락에 너무 목매고

 

의지하면서 지내는것 같다는거예요..

 

남자친구와 결혼전제로 만나고 있는중입니다..  고작 몇개월 밖에 안지냈는데

 

제가 너무 남자친구 연락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지내는 것같아요..

 

제가 지금 일을 쉬고 있는데.. 일을 쉬어서 더 그런가 싶었는데 일을 해도 남자친구한테

 

빠지면 무조건..올인 이라는거죠 모든지... 일을 해도 남자친구 연락에 .. 언제올까 폰확인해보고

 

이럽니다.. 그렇다고해서 남자친구가 연락이 너~무 안되는거 아닌데말이에요..

 

남자친구가 일어나서 일가기전에 출발한다며 카톡 남겨놓고 쉬는 시간에 카톡 두세번 하거나

 

전화한통 잠깐 하거나  퇴근하고 저한테 전화를 해요 남자친구가 차타고 집까지 20분거리정도

 

인데, 갈때까지 전화합니다... 예전이야 서로 알것도 많고 알아가는중이라 내내 통화해도 할말이

 

서로 계속생겼는데 요즘들어는 정말 할말이없습니다..  서로 흐름이 끊겨도 아무말안하고 있어도

 

그냥 통화붙잡다가 " 말 안해?" 둘중 한명이 이러거나 거의 제가ㅠㅠ.. 통화하고싶어서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애쓰죠... 남자친구는 할말없으면 끊자 이런식이구요... 정말 답답한 연애인거 아는데도

 

남자친구 연락이 안닿으면 불안하고... 뭐하고있을지 너무 궁금하고.. 그럽니다.. 이거 애정결핍인거 ..

 

저도 알고 너무 연락에만 목매는것도 알아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만나서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시러

 

다니면서 남자친구 연락에 너무 치중하지말자 하면서 세뇌시키면서 놀려고해도.. 얘들이랑 집중하며 얘기 잠깐 하고 다시 저도모르게 연락이 왔나 핸드폰을 확인해요

 

일을 해도 그렇고.. 다른 개인생활을 해도 그렇고.. 어떻게 해결점을 둬야할까요..

 

남자친구도 집에와서 밥 먹을께 기다려 그러면 전 기다리다가 남자친구 연락오면

 

전화 붙들거나 카톡하거나  거의 통화를 하려고 해요.. 정말 길~게 할때는..4시간도 했다는..

 

말도 딱히 많이하지도 않고 주제거리 생기면말하고 없으면 서로 조용하게 흥얼거리다가..

 

남자친구 성격이 저랑 너무나도 정 반대입니다  전 에이형 남자친군 비형

 

딱 대충 성격어떨지 짐작가시나요.. 남자친구 말대로  연락을 아무것도 못하고 서로 연락에만

 

붙잡고있는건 좀 아니지 않아? 라고 하는데 서로 감정이 격해지면 남자친구가

 

"너 너무 심해, 연락에 너무 목매지마라, 너할일하면서 연락하고 그러는거지,

집착하는것같아, 숨막혀" 이런말들을 하는데.. 저도 사실 속으론 인정하고 알고있으면서도

 

그게 정말안되서 괜히  여자친구고 연인사이면 궁금해서 연락 더 하려하고 기다리다가도 연락

 

할 수 있지않는거냐고 괜히.. 더 그렇게 말하게되드라고요.. 연락을 하루 좀더 못한다고 덜 한다고

 

해서 오빠가 너를 안좋아하는것도 아니고 덜 생각해서도 아닌데 너무 오로지 오빠만 바라보면서

 

그렇게 의지하지말라고... 그러는데   저도 남들 연애하듯이..

 

"너 할일 다 하고 연락해" 이러면 기다림없이 "갔다와" 하고 싶은데  정말 무얼 해도 밖에나가서 무언가를 해도 오로지

 

남자친구 연락에만 목매서 의지하니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어떻게 극복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서그런지 남자친구가 결혼해서 걱정이 너무된다고... 아무렴 제가 네살 어린것도

 

그렇지만 결혼하면  제가 지방에 내려가 살아야되서 친구도 주변에 없어서 남자친구만 바라보며

 

그럴것같다고 미리 부담을 갖고 걱정된다고 하더라구요.. 지방가서 일할 생각이지만 일을 해도

 

제성격이 이렇다보니 답답해서 글을 썻습니다...  저같은 경우인 분 계시나요

 

어떻게 극복을 해야하나요  정말 스스로가 답답하고 우울해지고 그러네요 제가 한심해지고..

 

왜이렇게 지내나 싶기도하구요... 


http://pann.nate.com/talk/324798382

Posted by 정규화
:


[질문]

안녕하세요저는 '성공과 실패'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썼는데 한국어 실력이 워낙 훌륭하지 않아서 수정이 좀 필요하는 것 같아요.

제가 쓴 거 여기 있어요.


"모두가 살다보면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패와 성공의 정의가  사람이 실패와 성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뜻을 찾아서 만족하며 후회 없이 달성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수도 있습니다반면에 우리가 해야  일이 잘못 되거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패라고 합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우리의 에고가 최악의 적이 됩니다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켜야할 마음이 나타나고 어떤 방법으로도 얼굴을 지키게 됩니다실제로는 실패를 당한 것을 받아 드리는  정말 어렵습니다하지만 인정을   있는 경우에는 실패가 기회가 되어 성공을 이끕니다이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이 있답니다.

우리가 성공에 대해 말할  원래 경제적인 혜택만족함과 공적이 떠오릅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  아는데  생각은 다릅니다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일을 끝까지 못하면 성공이라고 부를  없습니다바로   때문에 성공을 하고 싶다면 대단한 의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답변]

우선 반갑고요,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시네요. 몇몇 부분만 고치면 한국 학생이 썼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요.
다만 몇몇 접속사와 문법, 단어사용, 한자어(漢子語)의 사용에 있어서 틀리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 고쳐 드리겠습니다.
삭제할 부분은 취소선(취소선)으로 표시하고 새 문장 또는 단어를 작은따옴표(')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모두가 살다보면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패와 성공의 정의가  사람이 실패와 성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뜻을 찾아서 목표를 달성하고 그로 부터 만족을 찾아 후회 없이 사 것이 성공이라고 합니다반면에 우리가 해야  일이 잘못되거나 소원'꿈'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패라고 합니다.

(위 두 문장은 전체적인 문맥 수정)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우리의 에고가 최악의 적이 됩니다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켜야할 마음'자기방어기제'가 나타나고 어떤 방법으로도 얼굴'체면'을 지키게 됩니다실제로 실패를 당한 것을 받아 들이  정말 어렵습니다하지만 '실패를' 인정  있는 경우에는 실패가'그것이' 기회가 되어 성공을 이끕니다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라는 유명한 명언이 있답니다.

우리가 성공에 대해 말할 때'엔' 원래'먼저' 경제적인 혜택만족'감'과 공적(써도 되지만 한국어에선 '업적'이란 단어가 좀 더 보편적으로 쓰임. 공적은 주로 '위인전' 같은 데에 쓰일 만한 단어.)이 떠오릅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면 성공한  아는데  생각은 다릅니다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일을 끝까지 못하면 성공이라고 부를  없습니다바로   때문에 성공을 하고 싶다면 대단한 의지력을'를' 발휘해야 합니다."



이상 문법, 문맥적인 부분을 고려한 첨삭을 해 드렸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글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있게 쓰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초반부를 읽을 땐 필자가 '진정한 성공은 겉으로 보여지는 성공, 사회적인 성공보단 자기 마음속에 있다.'와 같은 주장을 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 마지막 문장의 결론부를 보면 '성공'이란 단어를 일반적인 의미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대단한 의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로 끝맺는 것은 전체의 맥락과 맞지 않고 에세이의 주장, 결론 모두를 모호하게 합니다.
그럼  제 첨삭답변이 질문자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docId=209767924

Posted by 정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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